김홍경(73) 전 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6일 국민일보에 증언한 2013년 3월의 사임 압박 전화 사실은 현재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검찰 수사와 맞물려 시사점이 크다. 검찰은 그간 국책금융기관이 얽히고 정권 교체 시마다 사장이 바뀌는 ‘주인 없는 기업’들이 보이던 비리 행태들을 KAI에서 발견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하성용(66) 사장의 개인비리뿐 아니라 사장 임명을 둘러싼 전 정권 로비 의혹까지도 대상으로 할 것이란 관측이 크다.
KAI는 2013년 5월 21일 하 사장의 취임을 공시하며 대표이사의 변경 사유를 ‘김홍경 전 대표의 사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은 이에 앞선 2013년 3월 진영욱(66) 전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을 통해 사임을 권유받은 상태였다. 진 전 사장은 김 전 사장의 말과 달리 전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기관에 대한 견해 표명을 단순히 전달했을 때, 외압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고도 설명했다.
사임 권유 전화 사실과 취지에 대해서는 말이 엇갈리지만, 누가 후임으로서 KAI를 경영할지 몰랐다는 사실만큼은 둘의 기억이 일치했다. 김 전 사장은 전화를 받을 때 “좋은 분이 경영했으면 한다”는 말만 듣고, 구체적인 이름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주주총회 안건이 알려진 5월 중순에야 (하 사장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진 전 사장 역시 후임이 누구였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는 하 사장에 대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며 “주주총회가 끝난 뒤에 인사는 왔더라”고 회고했다. 당시 정책금융공사(정금공)의 의결권이 50% 수준에 육박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정금공은 26.41%의 지분율로 이미 KAI의 최대주주였고, 현대차 등 다른 기업들에게서 주주권을 위임받은 상태였다. 하 사장의 KAI 사장 선임에 청와대나 정치권 등 외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개연성을 키우는 정황이다.
방산업계에서는 KAI의 지배구조가 취약했고, 대대로 정권의 영향을 받아 사장이 선임됐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실제 KAI의 사장은 정권교체 때마다 쫓겨나다시피 하는 관행이 있었다. 김 전 사장에 앞서 정해주(74) 전 사장도 이명박정부 출범 5개월 만인 2008년 7월 사임했다.
이같은 하 사장 임명과정을 감안하면, 검찰의 KAI수사가 하 사장의 원가 부풀리기 의혹 차원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가 방산비리를 적폐로 규정지은 상황이기도 하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하 사장의 임명 강행 과정을 살펴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이미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KAI가 종업원 선물 용도로 구입했던 52억원어치의 상품권 중 17억원가량의 용처가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전 정권의 하 사장의 선임 개입 의혹을 질의받고는 “관련 내용을 파악해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다.
검찰·금융감독원의 KAI 분식회계 공조 수사도 의미심장하다. 이익을 과대 계상해 재무제표를 실제보다 좋게 보이려는 회계조작이 먼저 지목됐지만, 비용을 실제보다 크게 회계처리해 경영진이 빼돌리는 비자금 조성 수법도 의심되고 있다. 지난번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 때처럼 산업은행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KAI는 분식회계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른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감리결과가 확정되는 시점이나 3개월 이내에 재공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훈 황인호 기자 zorba@kmib.co.kr
‘KAI 인사 의혹’ 前 정권으로 번지나
입력 2017-08-0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