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중견기업계에서 ‘정책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소기업 시대’를 내걸고 대·중소기업 상생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중견기업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내년 일몰을 앞둔 중소·중견기업 지원 사업 ‘월드클래스300’의 후속 사업인 ‘월드클래스300 플러스’(가칭)를 추진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기업 선정 기준을 낮춰 기존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도 연구·개발(R&D)과 수출을 지원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연매출 400억∼1조원이던 기존 지원대상 기준 하한선을 100억원까지 낮출 계획이다.
중견기업계는 영세 중소기업까지 사업에 선정되면 중견기업 입지가 더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중견기업 정책을 관할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월드클래스300은 산업부가 2011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대표적 중견기업 지원정책이었다”며 “하지만 2년 뒤 정부 방침에 따라 사업이 중소기업청으로 이관되면서 중소기업을 중점 지원하는 사업으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중기부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사업의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매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을 상대로만 선정 기준을 낮추는 것”이라며 “중견기업을 차별할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중견기업계는 정부가 중소·대기업에만 관심을 기울인다고 지적한다. 중견기업을 ‘성장 사다리’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막상 지원 대신 규제만 해왔다는 것이다. 2014년 중기청 조사에 따르면 공공연구기관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중견기업은 2.6%에 그쳤다. 중견기업 A사 관계자는 “중소기업을 벗어나는 순간 각종 지원에서 배제되고 판로 규제 등 ‘규제 늪’에 빠진다”며 “그래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지 않으려고 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중견기업을 담당하는 중견기업국이 산업부와 중기청 사이를 오간 것도 불안감을 키웠다. 중견기업국은 2013년 산업부에서 중기청으로 이관됐다가 중기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산업부로 옮겨졌다. 반면 중소기업은 중기부가 일관되게 관할해 왔고 중기부가 장관급 부서로 올라서며 지원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관계자는 “중견기업은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라며 “일관된 중견기업 정책이 안 보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중견기업계에서 벌어진 잇따른 추문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제너시스BBQ 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정우현 전 MP(미스터피자) 회장은 가맹점주에게 ‘통행세’를 내게 하거나 ‘보복 출점’을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에 중견련은 중견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윤리강령을 다음 달 발표할 계획이다. 중견기업 B사 관계자는 “중견기업계 추문에 정부로부터 미운털 박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A사 관계자는 “미움 받는 것도 문제지만 무관심이 더 두렵다”며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모호하게 낀 중견기업이 정부 정책에서 아예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대·중소기업 사이 중견기업 “정부 무관심 더 무섭다”
입력 2017-08-06 18:23 수정 2017-08-06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