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드러나는 국정원 정치개입… 이번엔 뿌리 뽑아라

입력 2017-08-04 17:46
국가정보원이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학생, 주부, 예비역 군인 등 3500여명의 ‘댓글부대’를 운영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가 발표했다. 5년 전 전직 국정원 직원의 제보로 시작된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의 전모가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국정원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를 저지르고, 권력기관이 모두 나서서 사건을 은폐하는 구시대적 작태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국정원이 여론조작에만 나선 게 아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정치인 사찰, 언론보도 통제, 보수단체 지원 등을 지시한 회의 녹취록도 공개됐다. 특수활동비로 여론조사를 한 뒤 대응 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해 선거에 활용토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덮었다는 점이다.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 의혹이 계속 제기됐는데도 경찰과 검찰은 모른척했다. 심지어 사건을 무마하는 데 급급했다. 경찰은 대선을 3일 앞두고 국정원에 면죄부를 주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정치적 중립 원칙을 스스로 훼손했다. 검찰은 수사를 제대로 하려던 검사들을 징계하고 한직으로 쫓아버렸다. 원 전 원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돼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근에는 청와대와 법무부로부터 사건 무마 압력을 받았다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증언까지 나왔다.

국정원의 잘못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새로운 증거가 나왔으므로 검찰은 신속하게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 이번만큼은 엄정하게 수사해 썩은 부위를 확실하게 도려내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그동안 사건이 은폐된 경위도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진정한 국정원과 검·경 개혁은 과거 잘못을 드러내고 반성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