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朴 독대 때 감사인사 들을 분위기 아니었다”

입력 2017-08-03 18:13 수정 2017-08-03 21:28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3일 피고인 신문에서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주장을 부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세 차례 독대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분위기가 무거워졌다”며 “정유라씨 승마 지원에 감사 인사를 들을 분위기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이틀간 7시간20여분에 걸쳐 열린 피고인 신문에서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독대에서 오고 간 대화 내용과 성격을 특검 측과 정반대로 설명했다.

특검은 두 사람의 독대 장소를 부정 청탁이 오간 공간으로 지목한다. 2014년 9월 15일 1차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주고, 승마 유망주를 지원해 달라”는 말을 꺼냈고,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이를 수락, 뇌물에 관한 상호 합의가 이뤄졌다는 게 특검 주장이다.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정씨 승마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등의 행위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은 공소장에 적시된 문구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1차 독대 때 “박 전 대통령 요구를 들어주면 승계 작업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15년 7월 2차 독대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게 ‘승마협회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았다”고 했다. “아버지(이건희)께는 자주 야단을 맞고 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여성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는 말까지 했다.

2016년 2월 청와대 안가에서 이뤄진 3차 독대는 더욱 분위기가 무거웠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3차 독대에서는 대통령이 JTBC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말했다”며 “2차 독대는 대통령이 메모지를 보면서 말했는데 3차 때는 (종이를 안 보고) 마음에 생각하는 걸 급하게 터트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또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이 교체된 것도 인터넷을 보고 알았다”고 주장하며 그룹 내 자신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발언도 꺼냈다.

이틀간 공방을 지켜본 재판부는 40여분간 이 부회장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권은석(31·연수원 42기) 좌배석판사가 “대통령에게 잘 보이거나 밉보일 경우 어떤 이익이나 불이익이 있다고 생각했느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승마협회는 뭐 지원만 잘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JTBC 언급 당시는 정치적 보복을 받을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고 했다.

대주주이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무관심했다는 증언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물음에 이 부회장은 “훌륭한 전문 경영인과 미래전략실이 고심해서 결정한 걸 신뢰했을 뿐 방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과 지배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 입장에선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얼마나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지, 회사에 비전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양민철 이가현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