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위기 탈출 카드로 3일 개각을 단행했다. 장관 경험자를 대거 재기용해 안정감에 방점을 뒀다. 아베 총리가 어쩔 수 없이 측근들을 최대한 내쳐 기존 ‘아베 1강’ 체제를 스스로 허문 측면도 있다. 특히 ‘포스트 아베’ 주자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이번에 내각에서 나와 자민당 요직인 정조회장(정책위의장)을 맡으면서 자신의 측근 4명을 각료로 앉혀 존재감을 크게 높였다.
아베 총리는 “내각에 국민들의 따가운 눈길이 쏠리는 상황을 자초한 것을 반성한다”며 “새로운 포진으로 안정된 정치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친구에게 특혜를 준 의혹인 ‘사학 스캔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한동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개헌 일정에 대해선 “논의를 깊게 하기 위해 돌(제안)을 던진 것”이라며 “스케줄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체 각료 19명 중 정권의 ‘골격’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비롯한 5명은 유임됐다. 장관 경험자 8명이 다시 내각으로 들어왔으며, 처음 입각하는 각료는 6명이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과한 ‘고노 담화’(1993년)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 고노 다로(54) 전 행정개혁상이 새 외무상으로 임명됐다. 그는 ‘탈(脫)원전’을 지지하는 의원 모임을 이끌었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취임 직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꾸준히 이행돼야 한다”고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로 각광받다가 잇단 설화로 낙마한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 후임으로 오노데라 이쓰노리(57) 전 방위상이 재기용됐다. 그는 일본의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필요성을 강조해왔으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적이 있다.
총무상에는 아베 총리와 소원한 여성 정치인 노다 세이코(56) 전 자민당 총무회장(사무총장)이 기용됐다. ‘탈아베노믹스’ 공부 모임을 만들고 아베 총리를 향해 쓴소리를 해왔다. 아베 총리의 라이벌로 부상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와도 가깝다. 이 때문에 아사히신문은 “고이케 지사의 정치세력인 도민퍼스트회가 전국 정당으로 커질 것에 대비해 노다를 내각에 넣어 붙잡아두려는 속셈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경제정책 사령탑인 경제재생상에는 모테기 도시미쓰(61) 자민당 정조회장이 임명됐다. 사학 스캔들에 연루된 마쓰노 히로카즈 문부과학상과 야마모토 고조 지방창생상,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부장관은 모두 교체됐다.
당으로 복귀한 기시다 정조회장은 오노데라 방위상을 비롯한 측근 4명을 입각시킴으로써 차기 대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헌법 개정에 관해 ‘신중한 논의’를 강조했고 아베노믹스 보완 필요성도 언급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로 장래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36) 자민당 농림부회장은 당 수석 부간사장(원내수석부대표)으로 내정됐다.
한편 지지율 하락으로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가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9월 북한을 방문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도쿄=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아베色 뺀 개각… ‘고노 담화’ 아들, 日외교 키 잡다
입력 2017-08-03 18:07 수정 2017-08-03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