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서 ‘김상조’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가방’이 뜬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0년 가까이 들고 다닌 낡은 가방은 청렴과 외길 인생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연관 검색어는 ‘눈병’이다. 김 부총리는 부동산 대책, 세제개편안 등 넘치는 일에 과로가 겹쳐 결막염을 앓고 있다. 그의 충혈된 두 눈은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김 부총리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정권 초반 둘의 행보가 대조적이다. 김 위원장은 속된 말로 날고 있다. 프랜차이즈 대표들을 만나 어르고 달래다가 어느새 청와대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반면 김 부총리는 영(令)이 안 서는 분위기다.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본인 말마따나 취임 이후 4번이나 언급했지만 하루아침에 청와대와 여당은 김 부총리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었다. 김 부총리는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경제팀 수장으로서 신뢰도는 이미 금 간 상태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 위원장은 교수 출신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반면 김 부총리는 3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고 있는 ‘늘공(늘상 공무원)’이다. 같은 공무원 신분이지만 어공과 늘공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어공이 개혁 성향이라면 늘공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어공이 개국공신이라면 늘공은 패망한 왕조의 신하 출신이다. 그래서 정권 초반 어공의 입김이 센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문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어공이 늘공을 ‘다르다’고 보지 않고 ‘틀리다’고 몰아붙인다는 데 있다. 세제개편안 준비 과정에서 법인세와 소득세를 올리는 데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김 부총리의 소신은 ‘틀렸다’고 낙인찍혔다. 경제주체들에게 정책 변화에 대응할 시간을 주고, 법인세 인상과 함께 기업환경 규제완화, 투자촉진 등 ‘패키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늘공의 의견이 반(反)개혁성향으로 몰아붙여졌다. 청와대 핵심 실세는 모 부처 워크숍에 참석해 새 정부 정책을 제대로 이해 못한다며 늘공의 군기를 잡았다고 한다. 늘공의 의견이 항상 정답은 아닐 것이다. 또 최근 어공이 주도하는 개혁적인 정책 방향과 내용들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누가 주도권을 쥐든 경제정책은 일관성 있게 길게 보고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8·2 부동산 대책과 세제개편안을 보면 그런 점이 아쉽다. 정권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로,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경제주체들이 대비할 여유도 없이 중요 정책을 너무 급하게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현 정부는 노무현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고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 찔끔찔끔 대책으로 부동산시장을 잡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번 8·2대책에는 쓸 수 있는 정책 카드를 모두 망라했다. 종합부동산세의 ‘안 좋은 추억’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임기 내 서민·중산층 증세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런데 늘공을 단순히 시키는 대로 일하는 ‘기술자’로 여기는 실세 어공들의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 같다. 한 늘공은 노무현정부 초기에 청와대에 입성한 ‘386세대’ 출신 실세로부터 반동세력이라는 말을 듣고 한 대 치고 관두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 담았다고 회고했다. 늘공도 생각이 다른 ‘우리 편’이다. 공무원이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과연 영혼 있는 소신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대 정치사의 원조 양김(兩金)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을 라이벌로 살았다. 둘은 팽팽히 힘을 겨루며 서로를 발전시켜나갔다. 김 부총리와 김 위원장으로 대변되는 늘공과 어공이 그런 관계가 된다면 앞으로 나올 정책은 좀 더 촘촘해질 것이다. 김 부총리가 조만간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열고 ‘할 말’을 한다고 한다. 어공들이 유심히 봤으면 좋겠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세상만사-이성규] 양김은 팽팽해야 한다
입력 2017-08-03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