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골화되는 北·美 대결구도, 한국이 안 보인다

입력 2017-08-03 18:28
지난달 28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을 발사한 이후 북·미 대결구도가 노골화되고 있다. 이번 발사가 동북아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대미 총력전에 돌입했다. 노동신문 등을 동원해 자신의 전략적 지위를 인정하고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미 본토가 사정권에 들어섰으니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다.

이에 맞서 미국은 김정은의 돈줄죄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북한·러시아·이란 제재법안’에 서명했다. 즉각 발효에 들어간 이 법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으로의 원유 및 석유제품 유입을 봉쇄하고, 다른 나라들이 북한과 인력·상품 거래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북한과 미국이 자신들의 힘을 한껏 과시하며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정작 국가 안위가 걸린 한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 사이에서 도대체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미 행정부 내에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표출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전쟁불사 발언을 내놓은 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과 생산적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거의 정반대 성격의 말을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막으려는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서(한반도) 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미국) 죽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60년 넘게 동맹을 지속해온 미국의 대통령이 한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실제로 국내외에서는 8월 한반도 위기설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쯤 되면 숨 넘어 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정부 내에서도 뭔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게 피부로 느껴져야 정상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3일 여당 의원들을 만나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측 여러 채널로부터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 위기 국면에서 주도적 역할은커녕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놓고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 말을 듣고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정부가 호들갑을 떨어 위기를 증폭시켜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안이하게 보이게 처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우리를 상대하지도 않겠다는 북한을 향한 ‘압박과 대화 병행’이라는 정부 기조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정부는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 상황이 변했으면 그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