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을 ‘여왕의 남자’로 살아온 필립 에든버러 공작(96·필립공)이 모든 공식 업무에서 물러난다.
엘리자베스 2세(91) 영국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은 2일(현지시간) 런던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왕실 해병대 퍼레이드 참석을 끝으로 은퇴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필립공이 자신의 마지막 단독 공식행사로 왕실 해병대 퍼레이드를 선택한 것은 그가 현재 왕실 해병대 명예 총사령관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왕립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필립공은 해군 장교로 2차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컬어지는 영국 왕실의 이런 전통은 필립공의 셋째 아들 에드워드 왕자의 포클랜드전 참전과 손자 해리 왕자의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등으로 이어졌다.
지난 5월 공식 은퇴 계획을 발표한 필립공은 최근 들어 공식 업무를 점차 줄여나갔다. 100세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로 공무를 수행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다만 왕실 대변인은 “필립공 개인의 공식 업무 활동은 마무리되지만, 가끔 여왕과 함께 공식행사에 참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필립공은 2011년에 관상 동맥경화로 수술을 받기도 했고, 궂은 날씨에 야외행사에 참석했다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지난해 말에는 여왕과 함께 독감에 걸려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스 왕족 출신인 필립공은 10세가 되던 해에 영국으로 건너왔다. 1947년 여왕과 결혼한 이후 70년 간 영국 역사상 최장수 통치자의 곁을 지키며 묵묵하게 ‘외조’를 담당해 왔다. 그는 줄곧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내 임무”라고 강조하곤 했다.
필립공의 은퇴를 두고 영국 정계와 현지 언론은 한목소리로 그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반응을 내놨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가장 깊은 감사를 전하며 행운을 기원한다”고 밝혔고,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훌륭하게 맞이한 은퇴 생활에 축복이 깃들기 바란다”고 말했다.
BBC는 필립공이 남긴 업적과 그의 어록들을 자세하게 소개하며 “70년 간 여왕 곁에서 국가와 국민을 극진히 지켰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사설에서 “필립공은 이제 조금 내려놓을 자격이 있다. 그는 항상 조국이 우선인 사람이었다”고 ‘여왕의 남편’을 기렸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70년 ‘여왕의 남자’ 퇴역하다… 96세 필립공 공식업무 ‘은퇴’
입력 2017-08-03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