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최신 ‘유전자 가위’ 기술로 돌연사를 일으키는 유전성 심장질환 유전자를 사람의 배아(胚芽) 단계에서 교정하는데 성공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직후의 초창기 배아 수준에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복구, 유전성 난치병의 대물림 가능성을 크게 낮췄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사진) 단장팀과 미국 오리건과학대(OHSU)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 Cas9) 기술을 적용해 비후성심근증의 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을 확률을 자연상태의 50%에서 72.4%로 높였다고 2일 밝혔다. 즉 자녀에게 병이 대물림될 확률을 50%에서 27.6%로 줄였다는 얘기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 3일(한국시간)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비후성심근증은 선천적으로 심장의 좌심실 벽이 두꺼워져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병이다. DNA 중 해당 유전자(MYBPC3)가 망가지거나 변형되면 발생한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자식 2명 중 1명은 걸린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체(Genome·게놈)에서 DNA 염기서열의 손상된 부위를 잘라내거나 새로운 걸 끼워넣는 등 방식으로 편집하는 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2012년 새로 선보인 3세대 기술이다. 잘라내는 가위 역할은 인공 효소가 맡는다.
한국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배아 실험에 쓰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만들어 제공했다.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도입해 손상 유전자를 교정하는 실험은 미국 연구진이 맡았다.
미국은 유전성 난치병 치료 연구에 인간 배아와 생식세포 변경이 허용돼 있다. 반면 한국은 생명윤리법상 연구 목적으로 인간 배아를 생성하는 것은 물론 배아의 유전자 치료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 연구진은 MYBPC3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비후성심근증 환자로부터 제공받은 정자와 한국 측이 제공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정상 MYBPC3 유전자를 지닌 난자에 동시 주입하는 방법을 썼다. 김 단장은 “기존엔 수정 후 유전자 가위를 주입해 같은 배아에 유전자가 교정되지 않은 세포가 섞여있는 모자이크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번엔 정자와 유전자 가위를 함께 난자에 넣어서 이런 섞임 현상을 극복, 유전자 교정 성공률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공청회를 열어 최근 유전자 가위 기술 연구 진척에 따른 생명윤리법 개선 여부를 논의할 방침이다. 일각에선 인간 배아 대상 유전자 편집 연구가 생명윤리와 직결돼 있는 만큼 섣부른 규제 완화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유전자 가위’로 배아단계서 유전자 치료 성공
입력 2017-08-03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