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사진작가’ 서준영 “카메라에 비친 직장인들, 우리에 갇힌 동물 같기도”

입력 2017-08-03 05:02
김지훈 기자
서준영 작가가 지난해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찍은 작품 ‘월요일 출근’. 그는 카메라 앵글을 통해 거대한 사회구조 안에 갇혀 있는 샐러리맨들의 일상적 피로와 무기력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눈빛 제공
오늘도 회사에 출근했다면 이 사진 안에 혹시 당신이 없는지 확인해보라. 비슷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가방을 메거나 들고서 하나 같이 고개를 약간 숙인 채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기대감 없이 등교하는 무표정한 고교생 같기도 하지만 출근하는 직장인들이다. 회사원이면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서준영(43·사진)씨 작품 ‘월요일 출근’이다.

그가 사진전문 출판사 눈빛에서 낸 사진집 ‘중간정산’에는 이 사진을 포함해 직장인들의 쓸쓸한 일상을 담은 작품 50여점이 담겨 있다. ‘중간정산’은 퇴직금 중간정산의 준말이다.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직장인의 삶을 상징한다. 2일 서씨가 일하는 서울 여의도 한 IT업체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회사 ID카드를 목에 걸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상고에 진학한 서씨는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제대 후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그는 전산회사를 다니다 희소성 있는 자격증을 따 지금의 회사로 옮겼다고 한다. “사는 게 힘들 때마다 ‘다 그렇게 산다. 조금만 참아보라’는 말을 되새기며 달려왔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은 샐러리맨이 되었구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그가 재미삼아 사진기를 처음 든 건 2001년.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던 무렵이다. 사진작가 김홍희(58)를 만나 사진을 배웠다. 평일에는 출·퇴근 시간 오가는 곳을 주로 찍고 주말에는 동물원 등 야외로 나가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아내와 딸의 모습도 많이 담았다. 일명 ‘똑딱이’라 불리는 디지털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녔다.

2007년부터 여의도 직장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스 안 퇴근 풍경, 벤치에는 낮잠 자는 회사원, 유리나 수족관에 비친 회사원…. 그는 카메라 앵글을 통해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새롭게 보게 됐다.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들은 우리 안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정형행동’을 많이 해요. 흔히 보이는 이상행동의 하나죠. 어느 날 카메라에 비친 직장인들을 보는데 그들이 우리에 갇힌 동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 감정 없이 지루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는….” 그는 회사원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이들과 다르지 않는 자기 삶의 무료한 패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자본주의 구조 상 인구 절반은 월급쟁이로 살아가야 해요.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거죠. 어떻게 보면 모순이죠. 제 사진은 이런 구조에 어떤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서씨가 사진에 몰입하는 것은 그런 구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보통 직장인보다 2배는 힘들어요. 매일 새벽 2∼3시까지 그날 찍은 사진 150∼200장을 정리하거든요. 요즘은 프로젝트 때문에 매일 야근이에요.” 그러나 취미는 어느덧 그를 사진작가로 만들었고 삶을 견디고 즐길 힘을 주고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직장인에게 취미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각자 자기 얘기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찾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진을 찾은 것처럼.” 그는 “아마도 제가 여의도에서 가장 행복한 직장인일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글=강주화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