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을 ‘21세기 재판’에 회부하다

입력 2017-08-03 00:00
서신을 쓰고 있는 사도 바울. 16세기 프랑스 화가 발랭탱 드 블로냐의 작품으로 현재는 미국 휴스턴 미술관에 전시돼있다.
바울의 회심 장소인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세워진 바울회심교회(위 사진). 바울이 선교 과정에서 채찍을 맞았던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섬에 위치한 바울기념교회(아래 사진). 국민일보DB
신약성경에서 예수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사도 바울을 택할 듯하다. 드라마틱한 회심 사건의 주인공, 로마서와 바울서신 등 여러 신약 본문의 집필자, 전 세계로 ‘기독교’를 퍼뜨린 일등공신 등. 그만큼 다양한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인물도 드물다.

하지만 그런 맹목적 칭송만큼이나 21세기에 들어와 그에 대한 비판과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그가 쓴 글에서 드러나는 남성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 동성애혐오 등의 면모가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2000년간 바울에게 덧씌워졌던 모든 혐의를 가지고 ‘바울을 재판에 회부’한다. 얼간이였다, 흥을 깨는 인물이었다,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노예제도를 지지했다, 남성우월주의자였다, 동성애혐오자였다, 위선자였다, 성경을 왜곡했다 등 8가지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본다.

재판 진행 과정은 제법 합리적으로 보인다. 저자들은 재판 진행에 있어 몇 가지 난관이 있음을 인정한다. 우선 바울에 대한 정보의 불완전성 문제다. 바울이 남긴 글들은 대부분 특별한 청중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특히 다른 이들에 대한 편지글이라는 점에서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바울을 21세기 현대인의 시선으로 자꾸 치환시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바울이 21세기 미국인처럼 행동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바울이 그가 ‘몸담은’ 시대의 인물일 것으로 기대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대표적인 혐의 하나를 살펴보자. 바울은 여성은 교회에서 조용하라거나,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등의 가르침으로 여성들의 공적이 돼 있다. 저자들은 디모데전서 2장, 에베소서 5장, 고린도전서 14장 등 논란이 됐던 성경 구절을 당대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본 뒤 이렇게 결론 내린다. 당시 바울의 여성관은 1세기 여성관에 비춰볼 때 매우 진보적이었다고.

가령 “여자는 조용히 배우라”(딤전 2:11)는 말씀에서 ‘조용하라’는 구절 자체에 집중하면 바울은 형편없는 여성차별주의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헬라인과 유대인 모두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지지하지 않던 시절, 바울은 여성이 조용히 ‘배울 것’을 가르쳤다는 점에 주목하면 그의 가르침은 분명히 여성을 해방시키는 방향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21세기 기준에 못 미치는 것 아니냐고 바울을 비판하는 건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시대 바울의 여성관이 당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이해하고 따져보자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저자들은 맹목적 숭배와 맹렬한 비판, 그 중간 지점에서 ‘공’만큼 ‘과’도 많았던 인간적인 바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들은 미국 팜비치애틀랜틱대 성서신학 교수인 랜돌프 리처즈와 미 아칸소 주 워시타침례대 기독교신학 조교수인 브랜든 오브라이언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했던 첫 책 ‘성경과 편견’에 이어 두 번째 협업이다.

바울에 대한 논의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할까’라는 문제까지 점검하게 만든다. 성경 본문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고 바로 묻기 전에, ‘이 본문이 본래 청중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먼저 생각해볼 때 더 정확하게 성경을 이해하고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