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AI 앞세워 예산 더 따내려는 부처들

입력 2017-08-02 05:00

다음달 초 국회 제출 예정인 각 정부부처의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을 앞세운 예산안들이 눈에 띈다.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은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항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보면 무늬만 4차 산업혁명·AI를 내세운 부실 예산안이 섞여 있다. 정부가 강도 높은 세출 조정을 예고했지만 부처의 ‘예산 몸집 불리기’ 관행이 여전한 셈이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주까지 예산안 2차 심의를 마무리하고 지난 31일부터 3차 심의에 돌입했다. 추가경정예산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서 살펴보지 못한 부처별 예산안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검토 대상 중에는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AI,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항목이 분류된 예산안이 포함돼 있다. 이 중 AI는 기존 예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규 사업에 속한다. 모두 7개 사업에 89억원 정도의 예산이 신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내용이다. AI를 내걸었지만 세부 사업 내역은 동떨어진 경우가 있다. 일례로 관세청이 ‘정보관리’ 내역으로 신청한 AI 예산은 실제로는 통상적인 전산 시스템 외부 용역 사업이다. 어떤 사업을 할지조차 미확정이다. 신청 예산 규모는 11억8800만원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전자정부법에 따라 5년에 한 번씩 수립하도록 한 기본계획 때문에 예산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최소한 AI는 아니라는 것이다.

클라우드로 분류되는 사업 역시 논란거리다. 전체 1000억원가량의 예산안이 심의 중이다. 하지만 예산안이 통과돼도 쓸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공정보 클라우드가 보안 때문에 엄격하게 막혀 있어서다.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클라우드 데이터 트래픽(사용량)은 일반적으로 80%를 넘어선다. 반면 한국은 1% 내외에 불과하다. AI·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키워드를 앞세운 예산안이 우후죽순 심의에 오른 이유는 새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고 있어서다. 부처가 예산을 좀 더 받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때문에 예산을 점검해 ‘옥석’을 가려야 하는 기재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법원에서 신청한 ‘사법업무 전산화’ 예산이 좋은 사례다. 향후 5년 이내에 AI 소송 도우미 체계를 구축해 민사소송에서 변호사 선임 없이도 소송이 가능토록 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담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온라인 소송 증가로 필요성이 생겨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