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기독교 발상지 양림동, 복음의 성지로 뜬다

입력 2017-08-02 00:01



성인 걸음으로 걸으면 반나절 정도 소요되는 광주시 남구 양림동의 역사 둘레길 ‘양림길’의 출발점은 양림동 주민센터다. 총 길이 4.5㎞ 둘레길 초입에 서면 마치 1900년대 초 광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지난 28일 방문한 양림길에서는 당시 선교사들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양림길은 선교사들의 이름을 따 ‘브라운 길’ ‘세핑 길’ ‘유진 벨 길’ 등으로 명명했다.

1899년 전남 최초의 서양의료소인 목포진료소를 세운 뒤 양림동에서 복음을 전했던 의료선교사 오웬(한국명 오기원)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각을 비롯해 호남신학대 캠퍼스 언덕에 자리 잡은 선교사들의 묘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광주기독병원 1대 원장을 지낸 윌슨(한국명 우일선) 선교사와 피터슨 선교사, 브라운 선교사 등의 사택과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 기념관, 커티스메모리얼홀, 구 수피아여고에 남아있는 윈스브로우홀도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영화로도 소개됐던 독일 출신 세핑(한국명 서서평) 선교사를 비롯해 양림동에서 사역했던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 중 대부분은 호남신대 선교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모두 22명의 선교사들이 안장돼 있는 묘역은 순교 신앙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호남신대 정문을 지나면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다형 김현승의 시비도 볼 수 있다. 책 모양의 돌 위에 가을의 기도를 새겼다. 한센병 환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흥종 목사의 삶과 신앙도 엿볼 수 있다. 이들 유적 외에도 둘레길 주변엔 400년 넘은 호랑가시나무와 참나무, 도토리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이 있어 걷는 내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양림동은 전통 한옥과 서양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야외 선교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동네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과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한 세 개의 각기 다른 ‘양림교회’가 이웃해 있을 만큼 선교의 전통도 깊다.

양림동은 전남 지역 최초 선교사였던 유진 벨이 선교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2008년 광주시 역사문화마을로 지정됐다. 이 양림동 선교 유적들이 조만간 관광자원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양림동산의꿈(이사장 김혁종 광주대 총장)은 올 3월 양림동에 사무실을 열고 내년부터 2027년까지 10년 동안 양림동 일대에 흩어져 있는 선교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연간 10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기독교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업 구상 단계부터 김회재 당시 광주지검장(현 의정부지검장)과 같은 광주시 기관·단체장들의 주도로 시작된 관광 인프라 육성 사업이다. 광주시의 경제와 문화, 선교 분야의 관광자원을 종합 개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총사업비만 1조2800억원 규모로 향후 관광 기반시설과 문화시설 확충을 비롯해 광주 근대 역사관 건립과 기독교성지 조성, 선교·순교루트 개발 등의 사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사업의 중심에 선교사들이 남긴 신앙 유산들이 많아 광주 기독교계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채영남 광주 본향교회 목사는 “광주의 근대 역사와 호남지역 선교 역사는 궤를 같이 한다”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남긴 다양한 유적을 개발해 관광객들이 찾는 광주를 만들어 간다는 이 사업에 대해 광주 기독교인들은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김혁종 이사장은 “양림동 선교사 유적이 돋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흘린 피와 땀을 통해 의료와 교육기관 등 광주의 발전을 견인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공공 유산을 개발해 관광객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광주=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