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中간 북핵 거래론까지… ‘코리아 패싱’ 경계한다

입력 2017-08-01 17:41
북한이 자국 본토까지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을 발사한 이후 미국 내 여론이 심상치 않다. 미국 행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직 고위 관리들 입에서 북한 문제를 중국과 직거래하자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합의하면 북핵 해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서 이 조건에 주한미군 철수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도 북핵 동결을 위해 미·중이 큰 틀의 거래를 해야 한다고 했고 제이 레프코위츠 전 북한인권특사는 남한 주도의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유력 언론들은 김정은 정권의 교체(레짐 체인지)가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주장의 기저에는 이번 미사일 발사로 동북아 안보지형에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하고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만큼 미·중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최고조로 치닫는 양상이다. 미국이 초강력 대북, 대중 경제제재를 예고하자 중국은 “북핵은 기본적으로 북·미간 문제이지 중국과는 상관없다”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이 화성 14형을 발사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길게 통화한 뒤 후속 조치를 성안 중이다. 여기에 러시아가 미 의회의 ‘북한-러시아-이란 패키지 제재법안’ 통과에 맞서 유엔에서 북한 편을 들고 나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일 대(對) 중·러 간 대결 구도가 짜이고 있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북한 문제에서 정작 한국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일부 전문가들은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공식·비공식 테이블에서 한국이 제외되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여러 주장들은 북한 ICBM 도발에 따른 즉흥적 분노일 뿐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리 낙관하기에는 현 국제정세가 간단치 않다.

북한 문제가 자국의 안보, 경제와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 된 이상 미국과 중국이 우리의 예측 밖에서 움직일 개연성은 상존한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 하나를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동안 강대국들은 우리 뜻과 무관하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자칫 한국의 미래와 한국인의 안위를 다른 나라 손에 맡겨놓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정부가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에서마저 밀려나는 경우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코리아 패싱을 막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우리를 빼놓고 무슨 일을 도모하겠느냐”는 안이한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시기다.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