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청와대 풍경이 달라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하는 바를 들어보면 그렇다. 비서실장과 수석들은 수시로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여민 1관 3층 대통령 집무실에 올라간다. 비서실장 방은 여민 1관 2층이다. 필요한 절차는 하나다. 제1부속실에 전화를 걸어 “(집무실에) 계신가”라고 물어보면 된다. 자전거를 타고 본관과 사저 사이에서 대통령을 찾아 헤매는 코미디는 사라졌다. 참모들의 건의에 대통령의 오전 결정이 오후에 달라지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낙점됐던 장관 후보자가 바뀌고, 발표하기로 예정됐던 정책들은 연기된다. 때로는 사저에 찾아간 참모들이 반바지를 입은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도 있단다. 정상국가에서 당연한 풍경인데, 이전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충격이 너무 컸다.
대통령의 격식파괴 스타일도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임명장 수여식에서 장관에게 먼저 인사하는 대통령, 국민과 거리를 좁히며 악수하는 대통령도 낯설지 않다.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청와대 풍경은 정상화됐고 우리는 5년 동안 무척 진지한 대통령을 보게 됐다.
많은 시간이 흐른 듯하지만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80일이 지났을 뿐이다. 5년의 시간을 고려하면 막 출발선에 선 셈이다. 달릴 준비는 대략 끝났다. 정부 조직 개편과 주요 인선이 대부분 마무리됐고,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일자리 창출 마중물이라는 추경안도 통과됐다. 사람 조직 돈이 준비된 것이다. 정권 초기 외교·안보의 핵심인 한·미 정상회담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임기 5년의 청사진도 나왔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지난달 25일 문재인정부 총리·장관들만 참석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지금부터는 성과와 실적으로 평가받는 그런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미지가 아니라 실적과 성과다.
문재인정부 사람들의 머릿속 깊숙이 각인된 가장 큰 명제는 ‘노무현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뜻은 좋았으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던 개혁, 불필요한 대결 전선을 확대했던 오류, 미처 준비되지 않았던 대통령과 386 참모들이 빚어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열망이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눈물을 머금고 2선 후퇴한 것도, 상대방 후보를 도왔던 인물과 박근혜정부에서 일했던 인물들을 핵심 요직에 기용한 것도, 특수활동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지금 초기 문재인정부 성적표를 가늠할 주요 정책들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최저임금제, 증세, 탈(脫)원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국방 개혁, 교육 개혁 등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정책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부터 논쟁이 시작된, 길게는 10년 이상 토론돼 온 정책들이다. 비교적 찬반 논리도 분명하다.
현재 상황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점은 분명하다. 양극화를 비롯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됐으며,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변화 열망도 크다. 과거 방식을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합의를 이끌어가는 문재인정부의 초기 모습이 미덥지 않다. 빨리 성과를 내놓겠다는 조급함도 느껴진다. 북한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이 하루 만에 번복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린 결정할 수 없다”는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선언은 정부의 준비 부족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던 증세는 여당 대표 발언이 나오자마자 1주일 만에 확정되는 분위기다. 여권은 올해 안에 공수처를 통과시키겠다고 자신하는데 “그렇게 쉽게 될 일이 아닌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최저임금 인상, 증세, 탈원전은 국민들이 대체로 지지를 보내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국민이 허술한 정부의 결정 과정과 그로 인한 혼란까지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답보다는 풀이 과정이 더 중요한 상황이 있다. 게다가 정부 정책은 100% 정답도 없다.
남도영 정치부장 dynam@kmib.co.kr
[돋을새김-남도영] 100% 정답은 없다
입력 2017-07-31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