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미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6개월을 기념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무역 분야 업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절차 착수를 명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8일 전 미 무역대표부가 보내 온 공식 서신에서는 이와 결이 다른 ‘가능한 개정 및 수정’을 고려하기 위한 후속협상(follow-on negotiation)이란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재협상이냐 개정이냐 하는 용어 선택의 차이보다는 협상의 내용이 중요하다. FTA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과 협상타결 의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원치 않을 이유는 많다. 첫째, 얻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자동차와 철강산업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수차례 표명했으나 정작 협상 테이블에는 둘 다 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무관세 교역 중인 상품 분야에서 실익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강한 정치적 동기가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실패한 업적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최근에 대표적 선거 공약이었던 오바마케어 폐지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FTA 파기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미 FTA를 원할 이유는 별로 없다. 첫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협정문 개정 고려 또는 양허 수정 등 한미공동위원회의 모든 결정은 양국의 컨센서스로 정해지고, 재협상 결과는 무역촉진권한(TPA)에 의해 연방의회의 비준이 필요하다. 그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경우처럼 행정명령을 통해 국제 무역협정을 파기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는 끝까지 그 카드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형적인 딜 브레이커(deal breaker) 유형의 협상가다.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거리낌 없이 협상을 파기할 수 있는 강경한 협상가다. 대표적 선거 공약 중 하나인 ‘재협상 또는 파기(renegotiate or terminate)’의 행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A or B(A 또는 B)가 아니라, Not A But B(A가 아니라 B)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는 이미 한·미 FTA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 첫째, 한·미공동위원회 개최는 재협상 절차가 아니다. 제22장은 제도규정 및 분쟁해결 절차일 뿐이다. 협정문 개정, 발효 및 종료 규정은 제24장 최종 규정이다. 둘째, 협정문 개정고려 및 양허 수정은 강행규정(shall)이 아니라 임의규정(may)이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공동위원회는 개최할 수 있으나 개정 및 수정은 강제할 수 없다.
셋째, 특별회기를 요청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상대 국가에서 개최된다. 만약 양국이 합의하는 경우 제3국 등의 다른 장소에서 개최될 수 있다. 우리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개최되는 것이다.
한·미 FTA에 부정적인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다른 한·미 협상에 지렛대로 이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익이 거의 없는 FTA 재협상 이슈를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사드 배치비용 등 나머지 협상에서 실익을 취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FTA를 파기하고, 나머지 협상을 미국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선거 공약을 지키고 국익도 챙기는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의 절차적 정당성을 처음부터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특히 재협상이 협상의 목적이 아닌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예컨대 특별공동위원회 소집 장소를 서울로 변경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재협상은 없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 확실히 각인시킴으로써 협상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협상 파기라는 상대방의 최후통첩 카드를 우리가 역으로 활용하는 공세적인 협상 전략이 필요한 때다.
안준성(연세대 객원교수·국제학대학원)
[기고-안준성] 한·미 FTA 공세적 대응을
입력 2017-07-31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