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체제 인정과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과 북·미 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얻어내 체제 위협을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핵·미사일 능력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준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비핵화와 경제 지원을 흥정하는 식의 협상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8일 ‘화성 14형’ 2차 시험발사 직후 “미국의 전쟁나발이나 극단적인 제재 위협은 우리를 더욱 각성시키고 핵무기 보유명분만 더해주고 있다”면서 “국가방위를 위한 전쟁억제력은 필수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며 그 무엇으로도 되돌려 세울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전략자산”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 4일 화성 14형 1차 시험 때보다 강경하다. 당시 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및 핵위협 청산을 조건으로 핵·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번에는 그런 언급 자체가 없다. 화성 14형 1차 발사 이후에도 미국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한층 더 위협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외무성은 30일 대변인 담화에서 “만약 미국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군사적 모험과 ‘초강도 제재’ 책동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단호한 정의의 행동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일차적으로 대미(對美) 위협이지만 남북관계에도 함의가 적지 않다. ‘북한을 압박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두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남북 군사당국회담 일자로 제안한 지난 27일 화성 14형 2차 시험발사 명령서에 서명했다. 처음부터 우리 측의 회담 제안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북한은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핵·미사일 고도화에만 열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 대한 압박 공세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남북대화가 열리는 것은 북한으로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빌미로 노골적인 대남 비난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6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 등 쉬운 것부터 접근하자는 입장인 데 반해 북한은 근본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의외로 남북 경색 국면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ICBM 열 올리는 北, 노림수는 ‘美와 직접 협상’… 체제인정·핵보유국 겨냥
입력 2017-07-3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