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일반환경영향평가 실시를 이유로 ‘연내 설치 불가’를 공식화한 지 하루 만에 사드(THAAD) 발사대 4기에 대한 임시 배치 결정이 내려졌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 발사에 따른 긴급 대응 조치다. 대선 이전부터 전략적 모호성을 들어 사드 배치 연기에 힘을 쏟았던 문재인정부도 잇단 북 도발 앞에 체면을 구겼다.
국방부는 지난 28일 경북 성주의 사드 부지 70만㎡에 대한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결정했지만 국방부는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일반환경영향평가를 결정했다. 취임 이후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해 왔던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당일 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추가 발사하면서 상황이 180도 급변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0일 “지금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며 “만약 북한의 미사일이 ICBM이라면 문 대통령이 경고했던 레드라인 임계치에 온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화성 14형이 사거리뿐 아니라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확보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특단의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 관계자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섰을 경우에 대한 대응 방안에 대해선 “현 시점에서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드 임시 배치,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대북 독자 제재 착수 등 강경책을 모두 들고 나온 것은 지금을 중대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시기를 어떻게 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한반도 여건이 정말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에 대해 “이미 배치된 발사대 2기에 대한 보완공사를 통해 유류를 공급하고, 병사 편의시설을 확보할 것이다.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성주 부지 내에 있는 말발굽 형태 부지 내에 임시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32만8779㎡인 이 부지는 박근혜정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 기준(33만㎡)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기형적 형태로 제공한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이를 강력히 비판했지만 결국 박근혜정부의 수순을 밟게 된 셈이다.
정부가 당초 ‘절차적 정당성’을 이유로 사드 배치를 1년 정도 미룬 것은 일반환경영향평가 기간 중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겠다는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번 뒤 갈등 현안을 해결한다면 사드 배치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발목을 잡았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전된 북한의 ICBM 기술은 정부의 입지를 대폭 축소시켰다. 정부가 사드 발사대를 배치키로 결정하면서 한·중 관계의 가시밭길도 우려된다. 미·중 갈등을 격화시켜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는 북한 의도대로 국제 안보질서가 고착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성주 주민들의 반발도 부담이다. 사드철회성주투쟁위 등은 일반환경영향평가 시행 발표 하루 만에 사드 발사대 4기 임시 배치 결정이 나오자 정부를 거세게 비판했다.
북한 위협을 이유로 성난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재인정부는 하루 만에 사드 배치 결정을 변경함으로써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비판받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다.
강준구 문동성 기자 eyes@kmib.co.kr
사드 ‘연내 불가’에서 “추가 배치” 강경 선회 왜… 스텝 꼬인 안보정책
입력 2017-07-31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