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낙하산, 공공기관 상임감사] 모호한 임명 규정이 ‘낙하산’ 양산

입력 2017-07-31 05:00

미국 엔론의 파산 사건을 계기로 기업 상임감사 제도는 확산됐다. 엔론은 미국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랐던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다. 2001년 회계 부정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파산했다. 광케이블망 사업 투자 실패를 분식회계로 감춘 게 화근이었다.

세계적으로 ‘감사 도입’ 바람이 불었고, 우리나라도 1999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감사 제도를 받아들였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주요 공공기관에도 감사를 두도록 했다. 공공기관 가운데 일부는 내부 정관에 사외이사 격인 비상임감사 대신 상임감사를 임명하도록 해 내부 감시를 더욱 강화했다. 30일 공공기관 경영평가 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상임감사를 둔 공공기관은 98곳이다. 전체 공공기관 331곳 가운데 29.5%에 이른다.

상임감사는 내부 통제·감시, 회계부정 방지 등 맡고 있는 업무가 상당히 무겁다. 그러나 도입 취지와 다르게 상임감사 제도는 야박한 평가를 받는다.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회계사 등 전문가 위주인 비상임감사와 달리 상임감사에는 정피아(정치인+마피아), 관피아(관료+마피아) 등 낙하산 인사가 심심찮게 내려온다.

낙하산을 막중한 자리에 내려보낼 수 있는 것은 임명 절차 등에서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상임감사의 요건을 ‘업무 수행에 필요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규정한다. 구체적인 자격 요건은 없다. 대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각 기관마다 임원추천위원회가 있고 정관이 있는데, 정관에 보다 자세한 자격 요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원추천위와 정관은 ‘자격’ 대신 ‘결격 사유’만 명시하고 있다.

법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임원추천위에서 복수로 상임·비상임 감사를 추천토록 하고 있다. 이어 운영심의위원회를 거쳐 기재부 장관 또는 대통령이 임명토록 규정한다.

그럼에도 상임감사의 경우 ‘하향식 후보 추천’이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가 그것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형식 요건만 갖춘 채 ‘윗선’에서 점찍은 인물이 내려오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정현수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