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록 페스티벌 현장에 서다

입력 2017-07-30 21:29
권용주 작가의 ‘폭포’ 앞에서 관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기암괴석 같은 구조물에 무지개색 천을 씌워 인공폭포처럼 만든 작품이다. CJ E&M 제공

안개비가 뿌리던 지난 28일 경기도 이천 지산리조트의 록페스티벌 현장. 메인 무대인 ‘더 브이’에서 빈티지 팝 밴드 잔나비의 공연이 끝나자 야외 스테이지 코너에 자리한 인공폭포 앞에서 무대를 빠져나온 관객들이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거대한 구조물에 씌운 천의 형광빛 원색이 청춘의 빛깔처럼 싱그러웠다.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에 현대미술을 전파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아트디렉터 호경윤씨가 특수 요원처럼 투입한 작가는 권오상 권용주 노상호 윤사비 신도시(이병재 이윤호 2인 작가 그룹) 홍승혜 등이다. 갓 마흔의 신예 권용주에서 58세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인 홍승혜까지 스펙트럼은 넓다.

무대 막간에 기념사진을 찍는 촬영 장소가 돼 버린 인공폭포는 권용주의 작품 ‘폭포’다. 강렬한 전자 음향에 심장마저 벌렁거리는 록의 현장에서 듣는 폭포 소리는 달랐다. 여자 친구와 함께 록을 즐기러 왔다는 프리랜서 이준호(27)씨는 “음악과 미술이 만난 것 아닌가. 폭포를 보며 음악을 들으니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공폭포가 있는 반대편의 계곡 쪽에는 신도시의 설치 퍼포먼스 작품 ‘히든 바’가 있다. 음료도 판매하고 DJ가 음악도 틀어주는데, 이런 퍼포먼스 행위도 작품인 것이다. 테이블 대신 쓰인 드럼통, 반짝이 시트지 장식이 주는 촌스러움이 저항의 록 정신과 어울렸다.

무대 정중앙과 마주한 위치에는 스타 작가인 권오상의 ‘뉴스트럭처’가 버티고 섰다. 사진을 붙인 합판을 서로 기대 세워 2차원의 사진을 3차원의 조각 조형물로 구현한 것이다. 사진 속에는 아이슬란드 록밴드 시규어 로스의 패치 등 페스티벌에 초대된 ‘역대급’ 뮤지션과 관련된 이미지가 숨어 있다. 그러나 록과 기싸움을 벌이기에는 다소 색상이 가라앉았다. 이곳은 그냥 야외 전시를 하는 곳이 아니다.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광팬의 떼창이 범벅돼 3일간 열광의 도가니로 변하는 청춘의 해방구, 국내 최대 록페스티벌 현장이 아닌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와야 할 자리에 얌전한 청바지를 입고 나온 듯한 느낌이다.

또 다른 무대가 있는 페스티벌 현장의 입구. 겨울의 흰 눈 대신에 푸른 잡초가 우거진 스키 슬로프에는 홍승혜의 픽토그램 작품 ‘빅토리아’가 청춘에 V사인을 보내듯 서 있다. 그 아래 평지에는 윤사비가 목재로 만든 구조물에 다양한 기호의 홀로그램을 입힌 작품 ‘프리즘’을 내놓았다. 밤이면 프리즘을 통과한 것 같은 무지갯빛이 더욱 선명해지는 이 구조물은 그 자체가 앉아 쉴 수 있도록 꾸며졌다. 노상호는 이곳에서 쓰는 ‘T머니’의 디자인을 했다.

휴가를 내 바캉스 기분으로 록페스티벌을 찾았다는 직장인 정한나(32)씨는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쉽게 다가온다”고 말하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덴마크 출신 루카스 그라함, 뉴질랜드 팝의 신데렐라 로드 등 세계적 뮤지션의 무대를 찾아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이곳에서 미술 작품은 안개비처럼 관객 속에 젖어드는 듯 했다.

이천=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