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강준영]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기

입력 2017-07-30 17:52

국제사회의 규탄과 미·중 등 관련국들의 우려를 전혀 개의치 않는 북한이 28일 밤 11시41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을 발사했다.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듯, 지난 4일의 1차 도발 때보다 사거리가 2000㎞ 정도 늘어나고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동반한 2차 실험이다. 사거리 1만㎞ ICBM의 실전배치가 가시화된 것이다.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어 이미 레드 존(red zone)에 진입한 것과 다름없다.

이번 화성 14형 미사일 도발은 과거와는 다른 위기다. 이번 화성 14형 미사일 도발은 과거와는 다른 요소들이 적지 않다. 북한은 중국과 인접한 자강도 산악지역에서 이동식 발사대를 통해 도발을 감행,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실전배치가 임박한 무기임을 과시했다.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미사일들이 모두 실전용이며 이미 상당한 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또 심야 발사를 통해 기습 능력과 요격체계 교란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고자 했다. 이제 북한의 미사일을 두고 ICBM급 여부나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 여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핵탄두 소형화 기술까지 확보하면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동북아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해 대응 조치로 강력한 무력시위를 전개하라고 지시했고, 미사일 발사 6시간 만인 29일 오전 5시45분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이 단행됐다. 특히 독자적 대북제재 부과 방안 검토까지 주문하면서 한·미 공조를 통한 미군 전략자산 전개와 환경평가 후 배치를 언급했던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지시하고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한·미 국방 수뇌부는 대북 군사 옵션도 논의했다고 한다. 더 이상 기존 대응 방식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상황인식을 통해 강공으로 전환한 것이다. 현 시점에서 매우 적절한 조치다.

북한은 이번 미사일 시험을 미국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한다. 대미 위협은 가득하지만 한국에 대한 메시지는 거의 없다. 한국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나 남북 군사당국회담, 적십자 회담 제의에 응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지만 대화에 초점을 맞춘 대북 정책이 적절치 않은 것은 북한에 대화라는 명분으로 남북 문제 조율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 도발을 두고 관련국들도 동상이몽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라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경고했고 당장 북한·러시아·이란 제재안에 서명할 예정이다. 시행만 된다면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할 실질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에 준하는 조치로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도 숨어 있다. 러시아는 화성 14형이 만일 ICBM급이라면 미국 주도 하에 대북제재 강화가 심화될 것이 자명하므로 1차 실험 때처럼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중국은 늘 그렇듯 북한에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와 긴장 조성 행위 자제를 촉구하면서 관련 각국이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북한의 도발을 보고도 오히려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에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미·중 관계의 틀에서 사드 문제와 연계하려는 속셈을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핵과 미사일을 중·미 관계 카드의 하나로 인식하는 단면을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다. 북한 위협에 직접적으로 시달리면서도 안보불감증이 도를 지나쳐 방관자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 미국과 중국,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대통령 말대로 안보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온 국민이 확고하게 단결된 모습을 보여줘야 북핵과 미사일 문제가 강대국 간에 카드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저지할 수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