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업에서 5년째 근무 중인 이상민(가명·30)씨는 여름휴가 때 집에만 있다. 이직 준비 때문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영어 점수를 다시 따고 헤드헌팅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려면 9일간의 휴가도 짧다. 이씨는 28일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는 국내여행을 간다고 했다”며 “이직에 실패하면 난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했다”고 말했다. “주변에 말은 안 하지만 직급에 관계없이 휴가 때 이직 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직장인들이 이직 준비에 바쁘다. 평소 업무 때문에 이직 준비가 어려운 직장인들에게 여름휴가만큼 이직을 준비하기 좋은 시기는 드물다. 이 기간에 영어 공부를 하고 면접을 준비한다. 서울의 한 어학원 관계자는 “정확한 수는 알기 어렵지만 휴가철에 학원을 찾는 직장인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20일 직장인 9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휴가 때 이직을 준비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들이 여름휴가 때 이직 준비를 하는 이유는 ‘최대한 빨리 이직하고 싶어서’(47.8%, 복수응답)였다.
특허법인에서 일하는 손모(29)씨도 이번 휴가 때 이직 준비에 전념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이직하고 싶은 회사에 다니는 선배도 만났다. 손씨는 “평소에는 업무가 많아 이직 준비가 어렵다”고 밝혔다. 손씨 역시 회사에는 가족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이씨와 손씨 모두 “지금 직장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빨리 이직하고 싶다”고 했다.
기업 인사팀도 이런 사실을 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휴가 때 이직 준비를 하는 직원이 상당하다”며 “그렇다고 휴가를 못 가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기업 인사 담당자는 “이미 마음이 떠난 직원을 붙잡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붙잡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휴가 때마다 반복되는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기업은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끼리 경력사원 공채 기간과 지원자를 공유한다. 이 기간에 워크숍을 열어 반드시 참여하게 하기도 한다.
반대로 휴가철을 경력직원 채용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는 최근 여름휴가철에 경력사원 공채를 진행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경쟁 회사 직원 여럿이 함께 휴가를 내고 경력공채에 지원한 것으로 확인돼 해당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난감해했다고 한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세태기획] 여름휴가 ‘동상이몽’… 직원은 ‘이직 준비’ 회사는 ‘봉쇄 작전’
입력 2017-07-2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