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을 둘러싼 혼선이 빚어진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정부가 원전 건설 여부에 대한 공론화 방침을 밝히면서 별다른 고민 없이 ‘공론조사’와 ‘시민배심원제’ 개념을 섞어 사용한 탓이다. 특히 공론화위가 자신들의 역할을 ‘결정’이 아닌 ‘조언’으로 규정하면서 “공론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던 정부도 신뢰성에 타격을 입게 됐다.
당초 공론화위 내부에서는 ‘공론조사 대상자가 곧 시민배심원’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27일 2차 회의 전 열린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이 부분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공론조사 결과는 찬반 의견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용어 선택에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차 회의 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선거로 위임을 받은 권력이므로 그냥 (원전 공사 중단을) 추진해도 된다. 거기에 더해 공론조사로 시민 의견을 수렴해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면 물론 더 좋다”면서도 “결정을 시민배심원이나 공론조사에 맡기고 정부는 그대로 따라가겠다고 한다면 책임 방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개념 구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공론화 계획을 내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27일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를 발표하면서 “공론조사란 특정 이슈의 상반된 시각과 주장을 담은 균형 잡힌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은 상태에서 대표성 있는 배심원단의 토론을 통해 형성된 공론을 확인하는 기법”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공론화위가 내부 논의 끝에 정부의 당초 로드맵을 뒤집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공론화위는 27일 서울 광화문빌딩 사무실에서 2차 정기회의를 열어 공론조사의 기본 방향을 논의하고 표본 규모와 조사 설계 방안 등을 심의했다. 공론화위는 우선 지역과 성별, 연령 등을 안배해 2만여명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후 이들 중에서 350명 안팎을 공론조사 대상자로 지정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공론조사 대상자를 뽑아도 일부가 출석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일반적으로 참가율이 75% 정도 되는 점을 감안해 400∼500명을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배심원제 운용이 물건너감에 따라 정부와 공론화위는 조사 대상자의 명칭을 ‘시민참가단’ ‘국민참가단’ ‘시민패널’ 등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론화위는 우선 다음 달 중에는 본격적인 조사 절차에 착수할 방침이다. 공론화위는 다음달 1일 신고리 5, 6호기 건설 여부에 대한 공론 형성과 합리적 공론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갈등학회와 함께 공론화 관련 전문가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이희진 공론화위 대변인은 “공론화위는 오늘 청취한 전문가 의견을 참고로 향후 추가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정부 ‘공론조사·시민배심원제’ 개념 섞어 써 혼선
입력 2017-07-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