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7일 재판부의 판결 낭독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의 한구석에서 그의 이름이 호명된 이후 김 전 실장의 주장은 한결같이 “블랙리스트를 모른다, 만든 일이 없다”였다. 거짓이면 위증의 벌을 받겠다고 맹세한 국회 청문회장, 법정에서도 이 주장은 계속됐다. 지난 3일 결심공판에서는 “문건을 특검 조사 때 처음 봤다”고까지 했다. 결국 모두 거짓말로 남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검사로서 성장해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권력의 최정점이었다. 법무부 장관이던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에 내려가 초원복집에 지역 기관장 9명을 불러놓고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된다”고 했다. 이 사건의 폭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그는 대통령선거법 자체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며 무죄를 얻었다.
법을 잘 아는 그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국정농단 사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박영수 특검은 “5공비리 수사 때 모셔봤는데, 그분의 논리가 보통이 아니더라”며 수사의 최고 난제로 김 전 실장을 꼽았다. 언론은 ‘법꾸라지’라고 했는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김 전 실장이 특검에 소환될 때 자신의 SNS에 ‘법마(法魔) 김기춘이 출두한다’고 썼다.
하지만 구속 기소 이후 김 전 실장에게 예전 같은 묘수는 없었다. 자신이 수사 대상이 아니라며 특검의 직무범위 이탈을 강조했지만 법원에서 단번에 기각됐다. 건강이 좋지 않다며 옥사(獄死)를 피하게 해 달라고도 간청했지만 판결은 단호할 뿐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번엔 못 빠져나갔다…‘법꾸라지’ 김기춘의 말로
입력 2017-07-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