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빚 전액 탕감, 모럴해저드 유발 않도록 유념해야

입력 2017-07-27 17:40
정부가 장기간 빚을 갚지 못하면서 갚을 능력 자체가 없는 사람의 채무를 탕감해주기로 했다. 개인 회생을 지원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국민행복기금 보유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장기 소액 연체 채권을 매입한 뒤 소각하는 방식으로 채무 탕감을 공약한 데 따른 것인데 이번엔 민간 부분까지 그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과거 정부에서도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 중 원금 일부 감액과 이자 감면 등 채무 재조정을 통해 회생을 도와준 적은 있으나 빚 전부를 탕감해주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다음 달 중 구체적 방안을 내놓기로 했는데 현재 검토되고 있는 소각 대상은 대부업체가 보유 중인 소액 장기 연체 채권과 국민행복기금 보유 장기 소액 연체 채권으로, 대상자는 80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1000만원 이하 소액 연체자 가운데 현재 채무조정 약정을 맺은 뒤 빚을 갚고 있는 사람이 83만명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같은 소액 장기 연체자이면서도 약정을 맺은 뒤 열심히 노력해 빚을 갚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버틴 사람은 돈 한푼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틀리지 않다. 물론 정부에선 상환 능력을 철저히 심사하겠다고 했으나 한계가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소액 채무자가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나무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국민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이자 역할이다. 하지만 빚을 일부라도 갚아야 하는 채무 재조정과 완전히 없었던 것으로 해주는 탕감은 차원이 다르다. 개인회생, 파산, 워크아웃 등 현행 채무 재조정 제도와 절차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세금으로 개인의 빚을 완전히 갚아준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사한 지원책이 나왔기 때문에 채무자들 사이에선 ‘버티는 게 상책’이라는 그릇된 인식마저 퍼져 있다고 한다.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탕감과 함께 실질적 재활 프로그램이 병행되지 않으면 이 제도는 예산만 축내고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채무 탕감 대상자의 경우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빚을 갚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빚 탕감 이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채무자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정부도 잘 알겠지만 신용질서를 무너뜨린 사람들에게 책임 자체를 완전히 없애주는 것은 신용사회를 정착시켜 나가는데 배치되며 나아가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해야 하고, 시장에서 그런 믿음이 전제돼야 신용사회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