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저출산까지 겹치면서 ‘인구절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인구가 줄면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제기된다. 1990년대 이후 일본처럼 집값이 반토막 나는 붕괴 현상이 올까.
한국은행이 거시경제 데이터를 총동원해 이 질문에 답을 내놨다. 결론은 “가능성 낮다”다. 1·2인 가구 증가로 중소형 아파트 선호 현상은 계속되고, 은퇴세대의 투자 수요로 월세 확대 추세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26일 금융안정국 오강현 과장 등 5명이 공동 집필한 ‘인구 고령화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인구 고령화에도 2035년까지 주택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그 증가폭만 둔화된다고 분석했다. 2015년 집값을 100으로 해서 2020년 집값은 107, 2025년은 116.9, 2035년은 129.1로 추산됐다. 2020∼2035년에 주택가격은 연평균 0.3%의 증가율을 유지한다는 예측이다. 전국 평균이기 때문에 주택 수요가 높은 수도권은 이보다 증가율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는 2020년부터 생산가능인구에서 벗어나 고령층에 진입한다. 노후 준비가 부족해 은퇴 후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여생을 보낼 것이란 관측은 금방이라도 집값 폭락이 빚어질 것처럼 과대 포장됐다. 하지만 한은과 통계청이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60세 이후에도 집을 보유하는 추세가 여전했다. 70세를 넘겨 연소득이 연간 최소생활비(2300만원) 이하로 떨어져야 비로소 집을 처분하는 비율이 늘기 시작했다. 통계청은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나이를 72세로 본다. 고령층의 주택 매도 실행이 생각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92년 집값 붕괴가 시작돼 2016년까지 223개 주요 도시의 누적 하락률이 53%에 달했다. 한국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은 90년대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일본 사례를 보면 우리 집값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한은은 일본과 한국 주택시장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그 이유로 주택공급 방식의 변화를 첫손에 꼽았다. 정부가 대규모 택지개발보다 도심 재건축·재개발 위주로 바꿔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도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기존에 살던 곳을 재정비하는 것이라 물량이 제한돼 집값 하락을 막는 효과가 있다.
또 목조 주택이 많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파트 비중이 월등히 높다. 아파트는 매매 회전율이 높아 환금성이 좋다. 이 때문에 일본식 급락은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재고주택량 대비 연간 주택매매량은 2013년 0.32%인 데 반해 한국은 2016년 10.4%였다. 한은 관계자는 “일본도 금융위기 등 외부 요인이 컸고, 우연히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기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며 “고령화만으로는 집값 하락 요인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한은은 중소형 아파트 선호, 월세시장 확대가 지속된다고 예측했다. 고령화로 1·2인 가구가 늘고 있고, 50·60대에서 노후 대비용 임대소득을 얻기 위한 투자 목적의 주택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고령층 주택 매도 압력을 낮추려면 주택연금 활성화와 은퇴가구 보유 주택의 임대전환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韓銀 “고령화로 인한 일본식 집값 붕괴 없다”
입력 2017-07-27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