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도 독일 스위스 등 국가별로 파생된 기독교 분파에 대한 재조명이 한창이다. 그런데도 ‘잉글랜드 국교회’로 시작한 성공회에 대한 관심의 열기가 감지되지 않는 건 뜻밖이다. 현대 신학의 다양한 논의를 주도하는 영미권 신학자 상당수가 성공회 소속임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이는 성공회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여전히 알 듯 말 듯한 교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公?·보편)된 교회(Holy Catholic church)’란 표현을 한자로 표현한 성공회(聖公會)란 이름에서부터, 이 교회가 어떤 곳인지 간파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홈페이지에서 스스로를 “‘개혁된 가톨릭’ ‘교황 없는 천주교’ ‘교리에 너그러운 정교회’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는 개신교’라고 해도 좋다”고 적고 있을까.
책은 이런 성공회의 정체성과 신학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신학자이자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인 마크 채프먼. “성공회 신학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던, 경쟁하는 여러 생각에 관한 이야기”를 시대별로 정리했다.
책은 이혼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과 각을 세우며 종교개혁에 시동을 건 헨리 8세로부터 시작한다. 에드워드 6세와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를 거치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잉글랜드 국교회가 확립됐다. 이 과정에서 왕의 수장권(首長權)을 둘러싼 논란 등 수많은 갈등이 이어졌다. “17세기까지 잉글랜드 교회가 의회의 통치권 아래 있던 독점적 국가교회였음을 고려해볼 때, 성공회 신학은 언제나 정치적이었으며 교회와 국가에서 문제가 되는 사안을 자주 다뤘다”는 저자의 설명대로다.
신학적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도 독일의 마르틴 루터, 스위스의 장 칼뱅처럼 걸출한 대표 신학자를 통해 교리가 집대성됐던 것과 달랐다. 저자는 성공회 대표 신학자로 리처드 후커(1553∼1600)를 꼽으며 “성공회 특유의 방식이라 할 중도의 길(via media)을 구축하고 성공회 신학의 근거로 성서 전통 이성이라는 삼중구조를 체계적으로 형성한 인물”이라 소개한다. 그의 대표작은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성서가 다루지 않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연법 이성법 인간법 등 하나님이 제정한 법의 문제를 고찰했다. 저자가 “특정 사안에 있어 성서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을 때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 ‘어떻게’ 법을 제정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성공회에서 늘 야기됐던, 어쩌면 영원히 반복돼 나타날 문제”라고 진단한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저자는 19세기 이후 성공회가 170여개국 8000만명의 신자가 모인 세계 최대 교단 중 하나로 성장한 과정에 주목한다. 아프리카 토착 관습의 존중과 구원의 보편성을 둘러싼 이단 시비 등 간단치 않은 사안이 줄줄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각 나라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성공회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이 책을 성공회 교인이 아닌 기독교인들이 읽어야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답은 ‘성공회는 상처와 분열을 치유하고 화해하며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회복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화해와 복음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가 성공회의 역사를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박동신 대한성공회 의장주교의 한국어판 인사말에서 찾을 수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개혁된 가톨릭’ ‘교황없는 천주교’… 알 듯 말 듯한 성공회의 신학과 역사
입력 2017-07-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