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국가상대 소송서 시간끌기式 ‘몽니’ 안부린다… 잘못 있으면 인정키로

입력 2017-07-25 18:00 수정 2017-07-25 23:28
문재인정부 국무위원들과 참모진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위쪽부터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과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각각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환경부의 항소 부당성을 지적한 ‘서울 용산 미군기지 오염실태 조사’는 2015년 1차 조사, 지난해 2∼3차 조사가 이뤄졌다. 시민단체의 소송 끝에 내용이 공개된 1차 조사 결과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기준치의 최대 160배까지 검출됐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1차 조사 공개 판결까지 난 상황에서 환경부가 다시 2∼3차 조사 결과 공개 판결에 불복하려 하자 문 대통령이 제동을 건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와 유사한 공익소송이나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같은 명백한 정부 과실 등에 대해선 정부의 소송 대응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 4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환경단체 등이 환경부를 상대로 제기한 1차 용산 미군기지 오염조사 정보공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확정 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환경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군기지 내 지표면에 지름 15∼20㎝ 관측정(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조사한 결과 관정 1곳에서 기준치(0.015㎎/ℓ)의 162배인 2.440㎎/ℓ의 벤젠이 검출됐다. 관정 18곳 중 4곳에서 기준치의 20∼100배 수준의 고농도 벤젠이 나왔다. 지하수 오염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들 단체는 다시 환경부에 2∼3차 조사 결과도 공개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군기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정부는 이 부지를 생태자연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2028년을 목표로 3단계에 걸쳐 243만㎡ 부지에 최대 규모의 도시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생태자연공원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미군 시설 잔류 범위, 지하수 문제로 오염된 토양의 원상회복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장기간 공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나 탈원전 프로세스 등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환경부의 항소는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데다 법리적으로도 패소 가능성이 크고, 공약 실행에도 장애물이 되는 악재인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법률가 출신인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항소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완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정부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 각종 소송이 제기되면 잇단 항소와 상고로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인식이 컸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정권이 바뀌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공안 사건 등에 대한 과거사 문제의 경우에도 피해자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피해를 보상받는 데까지는 장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24일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유서 대필 사건의 경우에도 강기훈씨 등 6명이 2015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1심 판결은 1년8개월 만인 지난 6일에야 선고됐다.

앞으로는 정부 정책의 투명성과 시급성을 담보하는 수준에서 합리적인 소송 대응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문제 등 명백한 피해자가 있는 경우에는 분쟁을 조기에 마무리 짓고 신속히 피해를 보상하는 기조가 자리 잡을 전망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