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킨 방식’ 원전 공론조사, TV토론·의견조사 등 6~7단계 진행
입력 2017-07-26 05:03
정부의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여부 공론조사 방식은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 충분한 정보와 토론 기회를 제공한 뒤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시민배심원단에 의한 공론조사’다. 하지만 공론조사 결과에 어떻게 정책적 구속력을 부여할지, 시민배심원단은 어떻게 선발할지 등 논쟁거리는 적지 않다.
공론조사는 1988년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처음 제안했다. 특정 이슈를 잘 모르는 불특정 다수 일반인에게 의견을 묻는 기존 여론조사 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도 24일 기자회견에서 피시킨 교수의 방법론을 기초로 검토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론조사는 대략 6∼7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우선 일반 시민 2000∼3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이들 중 200∼300명을 표본으로 추출, 해당 이슈에 대한 찬반 양측의 입장 등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어 10∼20명씩 조를 짜서 소규모 토론을 거친 뒤 전문가 패널이 참여하는 TV토론회를 연다.
TV토론회 이후 참여자를 대상으로 최종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문항은 1차 조사 때와 동일하다. 공론조사는 최종 조사에서 참여자가 첫 조사와 다른 응답을 내놓았는지 여부에 주목한다. 특정 이슈에 무지했던 일반인들이 정보 습득과 토론 등 공론화 절차를 거치면서 숙고된 여론, 즉 ‘공론’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공론조사 결과의 구속력이다. 공론조사 결과는 의사결정을 위한 참고자료로만 활용될 뿐 그 자체에 정책적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공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공론조사와 시민배심원제를 함께 운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질적인 두 방법론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5일 “정부가 공론조사와 배심원이라는 말을 섞어서 쓰고 있는데 사실 이 둘은 방법론이 다르다”며 “시민배심원 방식은 더 작은 단위에서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물론 절차적 합리성을 지키면 되겠지만 ‘맨땅에 헤딩’보다는 확립된 방법론을 따르되 필요하면 변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공론화위는 시민배심원 운영 방식으로 독일의 ‘핵폐기장 부지선정 시민소통위원회’를 모델로 제시한다. 독일은 핵폐기장 부지 선정을 위해 7만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뒤 571명을 표본으로 추출했다. 여기서 다시 120명의 시민배심원(시민 패널)을 선정해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독일은 수십 년 동안 탈(脫)원전을 공론화한 경험이 있다. 핵폐기장 부지 선정 작업 역시 3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반면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여부 공론화에 주어진 시간은 3개월뿐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 대변인을 지낸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처음에는 1년 안에 하려다가 20개월로 연장됐는데도 짧다는 비난이 있었다”며 “한국은 독일과 달리 결정 속도가 빠른 나라이지만 그래도 3개월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준웅 교수는 “절차 기획 1개월, 조사 1개월, 분석 1개월이면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공론화위가 매일 밤을 새워가며 일만 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