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警, 수사·행정 분리하고 ‘인권경찰’ 거듭나라
입력 2017-07-25 05:02
지난 5월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은 무고한 시민을 보이스피싱 용의자로 오인해 체포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때리는 등 폭행을 저질렀다. 또 한 여성이 2012년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며 지난해 전남과 서울의 경찰서를 찾았지만 “관할 경찰서를 방문하라” “증거가 없다”며 모두 신고 접수를 거부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새 정부와 정치권이 수사권 조정 등 검찰의 권한을 일부 경찰에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 같은 경찰의 반인권적 행태와 무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은 검찰 힘을 빼는 방안은 필요하지만, 그 힘을 경찰에 넘기는 게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수사권 조정보다 경찰 개혁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개혁의 방향은 권한을 나누고, 견제 기구를 만들며, 인권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힘 나누고 견제하고
경찰은 단일 규모 최대 중앙행정기관이다. 전체 경찰 인력은 14만여명(의무경찰 포함)에 달한다. 사법 개혁을 통해 경찰이 독자 수사권을 갖게 되면 경찰권이 비대해질 것이란 우려는 당연하다. 이 때문에 수사권 조정 전에 경찰권을 분산하는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고 경찰 내부에서도 동의하는 바다.
대표적인 경찰권 분산 방안은 자치경찰제다. 중앙집권적인 경찰 조직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권한을 나누고, 자치경찰에게는 절도·폭력·교통사고 등에 대한 일반적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이다. 경찰이 새로운 거대 권력기구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으로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시민단체는 이와 더불어 경찰을 수사경찰(사법경찰)과 일반경찰(행정경찰)로 나누는 방안도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치경찰제는 단순히 경찰 권한을 나누는 것을 넘어 경찰이 청와대 지시에 따라 정치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문제도 줄일 수 있다. 유주성 경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한국 경찰은 단일 국가경찰이다 보니 정권의 눈치만 보면 되는 식이었다”며 “(청와대가) 중앙만 쥐고 흔들면 일사불란하게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권한을 나누는 것과 함께 실질적인 감독 기능을 가진 시민참여 독립 기구로 경찰위원회를 설치하라는 것도 시민사회의 오래된 요구다. 경찰위원회는 1991년 출범했지만 감독기구라기보다 경찰 권력의 거수기 역할을 해 왔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실질적인 감독 기능을 갖도록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다산인권센터 희망을만드는법 등 9개 시민단체는 지난달 국민인수위원회에 전달한 ‘경찰 개혁 정책제안’에서 경찰위원회에 경찰청장 추천권과 해임요구권 등을 줘서 실질적인 감독기관으로 역할을 하도록 주문했다. 박노섭 한림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난달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LA 경찰위원회는 경찰 구성원에 대한 업무 감독을 위해 감찰관실과 집행감독관, 위원회 조사부를 두고 있다”며 감찰권 부여도 필요하다고 했다.
인권 경찰로 거듭나야
경찰은 청와대가 지난 5월 수사권을 받으려면 인권 친화적 경찰로 변모할 것을 경찰에 주문하자마자 인권 행보를 계속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의 경찰인권센터 방문, 경찰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권 교육 등이 그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에서 입은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 상임활동가는 24일 “반성 없는 경찰의 인권 행보는 무의미하다”며 “과거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우선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경찰의 반성과 더불어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 확립도 경찰에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경찰 개혁 정책제안’에서 “경찰이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범죄수사 이외 범죄 예방 명목으로 다양한 국민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며 “경찰의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의 근거가 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의 ‘치안정보 수집·작성 및 배포’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태도 변화도 요구 사항 중 하나다. 랑희 활동가는 “집회시위에 참가한 시민에게 일반교통방해죄를 물어 과태료를 물리거나 과도한 채증을 하는 경우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