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강남 재건축조합 ‘떵떵’… 건설사들 ‘벌벌’

입력 2017-07-25 05:01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아파트 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조합의 요구가 도를 넘으면서 건설사나 협력업체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무소불위가 된 조합이 재건축 비리의 온상이 됐다는 비판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일원대우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최근 세 번째 시공자 선정 입찰공고를 냈다. 공사비 500억원, 총 184가구 규모로 강남 재건축 단지 가운데 소규모에 속하지만 까다로운 선정 방식을 내걸었다.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 평가 7위 이내 건설사 중 최소 5곳이 입찰에 응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시공 8위∼10위인 롯데건설 현대산업개발 SK건설 등이 배제된 상황에서 1, 2차 입찰은 무산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비가 낮아 수익성이 떨어지는 단지가 과도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아예 입찰을 포기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며 “3차 입찰도 유찰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강남 재건축 단지의 ‘최대어’로 불리는 반포주공 1단지 1, 2, 4주거구역 사업지도 상황은 비슷하다. 2조6000억원의 공사비가 걸려 있어 지난 20일 대형 건설사 9곳이 현장설명회에 참석했지만 무려 15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고 수준의 입찰보증금이 논란이 됐다. 조합이 기존 다른 단지 보증금(평균 200억원)에 비해 7배가량 많은 금액을 부르면서 삼성물산 등은 아예 입찰을 포기한 상태다.

건설사의 컨소시엄 구성 여부도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대림산업과 현대산업개발은 최근 서울 서초구 신동아아파트 시공사 선정전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조합 측에 전달했다.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조합 측은 건설사 간 경쟁효과가 사라지고 브랜드명이 모호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조합의 요구가 도를 넘으면서 사업에서 발을 빼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대형 건설사 A사 관계자는 “조합 측에서 특정 업체를 협력업체로 쓰라고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게 관행처럼 됐다”며 “조합 임원과 대의원들 야유회에 협찬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합의 ‘갑질’이 끊임없는 재건축 비리를 낳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치권도 대응에 나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현아 의원(자유한국당)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발주하는 모든 용역에 대해 수의계약이 아닌 일반경쟁 방식을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민간사업이라 하더라도 조합의 의사결정 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감독하도록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일부 시공사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해를 피하려는 조합의 정당한 요구를 갑질로 폄하하면 안 된다”고 항변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