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4일 공식 출범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8명의 위원이 위촉돼 1차 회의를 했다.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 중요 현안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수단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노정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위원회의 태생적 한계에 따른 불신이 워낙 깊어 합리적 의심을 상쇄시킬 만한 묘책을 궁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탈(脫)원전’이란 정답이 정해진 상태에서의 공론화는 ‘구색 갖추기’라고 항변했다. 공론화위원회 무용론까지 거론됐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 점을 불식시키는 데 위원회 운영의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탈원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최대한 해소한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그나마 후폭풍을 줄일 수 있다.
편향성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과정과 절차,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시민배심원단 선정에서도 이런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전문성 없는 인사들이 엄밀한 배경지식 없이 감성적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지 살펴야겠다. 최종 결정에 앞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이 요구된다. 제3자 검증위원회 구성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공론화 과정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설문조사 집단의 크기를 확대해야겠다. 성별·지역별·연령대별로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의 의견을 청취해 표본집단을 추출해야 한다. ‘가동과 중단’의 이분법적 판단에 대해서도 고민해야겠다. 일본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듬해 공론조사에서 ‘원전 폐기, 원전 비율 15%, 원전 비율 20∼25%’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정책은 맞고 틀린 것을 가리는 결단만이 능사가 아니다.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차선이 때로는 최악을 피하는 결과를 낳는다.
위원회 활동 시한을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너무 끌어서는 안 되지만 3개월 만에 끝내겠다는 것도 밀어붙이기의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공론화위원회의 법적 지위 다툼과 관련, 정부는 명확하게 대답해야 한다. 위원회 결정 이후 법적 소송이 이어져 자칫 국책사업이 장기 표류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공론조사를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델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론조사가 새 정부 정책 결정의 기조임을 시사한 것이다. 공론화가 민주적 정책 결정의 새로운 전범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사전에 결론을 내린 듯한 발언을 되풀이하면서 공론화의 효용성을 주장하는 것은 왠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설] 원전 공론화委, 구색 갖추는 들러리여선 안 돼
입력 2017-07-24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