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이동훈] 최저임금 인상? 팁 어때요?

입력 2017-07-24 18:47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목표가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만났다. 17년 만에 16.4%라는 최대 인상폭인데도 식당 편의점 미용실 등 서비스업종 종사 업주는 물론 종업원들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특히 수혜 대상인 종업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는커녕 사장님이 혹여나 인건비 부담으로 자신을 자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처럼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1년 정도 시행해보고 추가 인상을 검토해보겠다고 한 것도 정책 페달을 너무 세게 밟은 나머지 오히려 경기 위축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공약 명분에 매몰돼 너무 급하게 서두른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정부가 서비스업을 활성화할 특단의 대책 없이 ‘케인스식 분수효과’를 너무 도식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적용하려 한 것은 아닐까. 물론 존 케인스가 말했듯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한계소비성향이 큰 것은 사실이다. 부자들은 이미 나름의 만족한 소비를 하고 있어 소득이 늘어나도 경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중산·서민층의 소득을 늘려주면 소비가 늘어 부자들의 소득도 늘고 이들로부터 세금(부유세)을 거둬 경기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경기부양 효과가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으로 올라간다고 해서 분수효과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런 분수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들 대부분은 최저임금 지급조차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영세하다. 대부분 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이들은 3개월만 불황이 닥쳐도 순식간에 길거리에 나앉을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데, 인건비가 급상승할 경우 현재의 고용 인원을 유지할 여력이 별로 없을 것이다. 동네에 우후죽순 들어서 있는 커피숍들은 알바생 먹여살리기 위해 장사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정부가 최저임금 상승분을 어느 정도 부담해준다고 하는데 이는 억지춘향일 뿐이다. 공무원 증원 문제도 그렇고 세금을 더 거두든, 고용보험기금의 문을 두드리든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태로는 조세저항만 심해질 수도 있다.

국내 서비스업, 자영업이 살아나려면 우선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일는지 모르지만 주인이나 셰프(요리사)가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의 유명 요리학교에서 유학하거나 백종원씨가 들러본 덕에 대박 난 식당이라도 종업원들의 표정이 밝은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종업원들의 기본적인 인식은 장사가 아무리 잘돼도 자신이 받는 월급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손님이 적든 많든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손님이 많을수록 그저 몸만 피곤할 뿐이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고객서비스가 발달해 있는데 그 근저에 팁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식당뿐 아니라 미용실 심지어 택시까지 이용요금 외에 일정한 비율의 팁을 주도록 돼 있다. 룸살롱에서 기분 따라 뭉칫돈을 팁으로 꽂아주는 한국과 다르다.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서비스업중앙회 같은 곳에서 일정한 기간마다 업종별 팁의 적정 비율을 권고하는데 팁을 무시하면 미개인 취급을 받는다.

고객들은 주인이 아닌 종업원의 서비스 수준에 따라 대가를 지불한다는 인식을 한다. 고객들은 서비스가 훌륭한 종업원을 따라 식당을 옮기는 경우가 많아 가게를 성공시키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미국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놓고 정치 성향에 따라 티격태격하지만 기본적으로 팁이 한 축을 맡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자영업자 망한다는 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분수효과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한국의 토양에 맞는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 개발이 긴요한 시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동훈 사회부장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