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與, 세제개편 갑자기 속도전… 준비 부족 ‘날림 시공’ 부작용 우려

입력 2017-07-24 05:02
‘증세’를 놓고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속도전’을 강조한다. 정부 안팎에선 ‘급선회’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획재정부는 다음 달 2일 법인세와 소득세율 인상안을 담은 세제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당초 계획과 달리 ‘부자 증세’를 공식화한 뒤, 열흘 만에 증세안을 마련하는 셈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 직전까지 여당과 정부,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증세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올해 안에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공언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지난 19일 활동을 종료하면서 내놓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증세는 공론화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황은 며칠 새 급변했다. 동시에 정부 내부의 혼란도 불가피해졌다. 일반적으로 그해 세제개편안은 6개월 가까운 준비기간을 거쳐 만들어진다. 세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선별하고, 관련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한다. 이어 기재부에서 최종적으로 세제개편안을 만드는 구조다. 이런 과정을 거친 올해 세제개편안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개최하기 전에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다.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연내 부자 증세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 정해지면서 올해 세제개편안은 어쩔 수 없이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23일 “기존 준비해 놓은 세제개편안에 일부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세율 인상안을 단순 추가하고 마칠 수 없다”면서 “기존 안도 ‘+α안(부자 증세안)’에 연동돼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법인세율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추진했던 기업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대폭 축소 같은 기존 개편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그림인 경제정책과 연동되는 세제를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묻지마 수정’하는 데 따른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권 지지율이 높을 때 증세를 시도하는 자체를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며 “충분한 준비와 절차를 거칠 수 있는 사안이었는데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때 기재부 등 정부부처가 청와대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던 쪽이 정권을 잡았는데, 그때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백년을 내다봐야 하는 세제정책에 날림 시공을 지시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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