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와 국회는 경기 상승기에는 감세법안을, 경기 침체기에는 증세법안을 주로 발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경기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 왔던 기존 세제개편은 ‘재정의 경기안정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따라다녔다. 반면 문재인정부의 첫 증세 움직임은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중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정부와는 방향이 반대다.
23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트렌드 세법’ 보고서를 보면 역대 정부와 국회는 경기가 좋을 때 감세정책을 내놓고, 경기침체기 때는 증세정책을 펼쳐왔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의 경제성장률과 이듬해 증세·감세 발의 건수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다. 조세정책이 경기의 흐름에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경기에 따라 달라지는 세수 상황과 관계가 있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특별한 조세정책 없이도 세수가 평소보다 더 걷힌다. 굳이 증세를 하지 않아도 나라 곳간은 두둑해지는 것이다. 반면 불황일 때는 세금도 덜 걷힐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 입장에서는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세금을 더 걷으려는 유인이 생기는 셈이다.
보고서는 “세수 증가를 재정 여력이 확대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고, 반대의 경우를 재정건전성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이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 법인세 최고 과표구간 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는 등 파격적인 감세정책을 들고 나왔다. 전년도 세수가 급격히 증가한 점도 감세정책 시행의 배경이었다. 세금이 잘 걷히고 있으니 감세를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2007년 국세는 161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나 더 걷혔다. 예상 세수와 대비해서도 9.6% 증가했다.
박근혜정부 때는 반대였다. 한국 경제가 ‘L자형’의 장기침체기로 들어서면서 사실상 증세 정책을 시행했다. 2014년 담뱃세를 2000원 인상한 방안이 대표적이다. ‘국민건강증진’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세수를 확보해 2012년부터 발생한 세수결손을 메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대기업과 관련된 각종 비과세·감면 정책도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조세감면 정비현황 시계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법인세 감면액은 6조4000억원으로 2012년 8조5000억원에 비해 2조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기간 신설된 조세감면 조항은 36개인 데 반해 폐지되거나 축소된 조항은 135개에 달했다.
재정의 경기안정화 측면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조세정책이 경기동행성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기확장기에는 세금을 더 걷어서 경기과열을 방지하고, 경기침체기에는 세금을 덜 걷어서 경제주체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국회 예정처 관계자는 “경기안정화 관점에서는 조세정책이 경기동행적 경향을 보이거나 최소한 경기중립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문재인정부의 증세 추진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부터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고 있고, 그에 따른 세수도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걷힌 국세는 123조8000억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 대비 11조2000억원 더 걷힌 것이다. 다만 이미 세금이 잘 걷히고 있는 상황에서 증세는 불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기획] ‘경기 좋아질 때 더 걷는다’ 부자증세 본격 추진… 종전과 다른 정책 시도
입력 2017-07-2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