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언론에 ‘폭우 속 폐지 줍는 노인’의 딱한 모습이 보도돼 포털사이트와 SNS를 뜨겁게 달궜다. 사진 속 노인이 초기 치매를 앓고 있었고 하루 전 집을 나가 실종 신고됐던 사연이 알려지며 큰 울림을 낳았다. 노인은 사진을 본 딸 지인의 신고로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노인의 가족은 후속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사 나가는 것이 너무 두렵다. 이웃들이 집에 치매 노인이 있다며 꺼림칙하게 여길까 걱정이다”고. 아버지를 찾은 기쁨보다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까 더 겁났던 것이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이라면 다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사회는 치매 질환에 오랫동안 주홍글씨를 새겨 왔다. 치매를 처음 진단받은 환자는 마치 절벽 끝에 서 있는 좌절감과 모멸감을 느낀다고 한다. 질환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심한 탓에 가족이 겪는 고통과 불안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치매를 다루는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병명을 에둘러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다. 어찌하다 치매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면 환자와 보호자가 소스라치게 놀라기 때문이다. 노인정에서 치매약 먹는 사람을 무슨 전염병 옮기는 사람 취급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는 부정적이고 비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병명이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치매는 ‘어리석다’는 뜻의 치(癡)와 ‘미련하다’는 의미의 매(口 아래 木)를 한자로 쓴다. 용어 자체로 모욕적이고 차별적 요소를 갖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 ‘멍청함’ 등을 뜻하는 라틴어 디멘트(dement)가 어원이다. 치매에 해당하는 영단어 디멘시아(dementia)도 여기서 비롯됐다.
한자 문화권인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은 치매를 동일하게 표기하고 읽는 방식만 달리 한다. 일본에서는 치매 용어가 ‘백치’ ‘바보천치’처럼 더 안 좋은 어감을 갖는다고 한다. 이에 일본은 2004년부터 후생노동성이 나서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으로 변경해 쓰고 있다. 대만은 2001년부터 ‘실지증(失知症)’, 홍콩과 중국은 각각 2010년, 2012년부터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4년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가 병명 개정에 대한 인식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전문가의 39.9%, 일반 국민의 39.6%가 치매 용어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전문가의 절반 가까이(49.4%)가 병명을 바꾸는 데 찬성했다. 반면 일반인은 병명 변경(22.3%)과 유지(22.8%) 의견이 비슷했다. 질병명을 바꿔도 별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거나 익숙한 용어를 바꾸면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결국 인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병명 개정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문재인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5년간 추진할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회 차원의 병명 개정 움직임도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지난 17일 치매 대신 ‘인지장애증’으로 명칭을 바꾸는 내용의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간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병명을 순화한 사례는 적지 않다. 조현병(정신분열병) 뇌전증(간질) 한센병(문둥병 혹은 지랄병)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 알맞은 치매 대체 용어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각에선 국회에 제출된 ‘인지장애증’의 경우 일본의 인지증에서 기원했고 장애라는 또 다른 부정적 단어가 들어가 좋은 명칭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국민인식 조사와 대체 병명 공모 등을 통해 여론을 다시 수렴해 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치매국가책임제 실현을 위해선 치매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치매안심센터 같은 부족한 시설을 늘리는 일과 더불어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확산이 중요하다. 치매 병명 바꾸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뉴스룸에서-민태원] 이참에 ‘치매’ 병명 바꾸자
입력 2017-07-23 18:12 수정 2017-07-23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