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소득세 등 이른바 ‘증세 입법’ 시기와 방식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제안으로 증세 논의는 개시됐지만 야당의 반대 속 험난한 입법 과정과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인세법·소득세법 개정안 발의와 관련해 여당 내부에서는 의원입법보다는 청와대가 정부입법을 통해 증세 논의를 진행해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여당이 정부를 대신해 증세 논의에 불을 지펴준 만큼 추후 입법 과정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 한 인사는 21일 “입법 시기와 방식에 대해 여러 안이 논의되고 있다”면서도 “현재까지 발의된 법인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안을 정부가 병합해 정부안을 내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여당이 의원입법을 발의하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의 의견 통일 과정도 거쳐야 하는 만큼 정부입법이 훨씬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원내 핵심 관계자도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간 협의를 통해 증세 물꼬를 텄으니 이제는 청와대와 정부가 증세 논의를 주도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가 법인세법·소득세법 개정안을 ‘당론 발의’하는 방안도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이른바 ‘경제민주화법’을 당론법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추 대표가 증세 문제를 공식화한 만큼 정책의원총회를 통해 추 대표 명의의 당론법안을 대표 발의할 수도 있다”며 “증세 법안에 대한 집권여당의 강력한 의지 표명과 함께 당·청 단일대오 형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다. 이번 증세 과정에서 노무현정부 시절 강력한 조세저항에 부닥쳤던 ‘종부세(종합부동산세) 악몽’이 재연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종부세는 민주 정권에는 일종의 트라우마”라며 “당시 땅 10평도 가지지 않은 국민까지 종부세 도입에 강력 저항하면서 집권 중반 권력 누수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노무현정부는 2005년 1월 ‘상위 1%’에 과세하겠다며 종부세를 신설하고 양도세를 강화했다가 극심한 국민적 반발에 직면한 바 있다.
때문에 민주당과 청와대는 이번 증세를 ‘부자 증세’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로 명명하고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 대상이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됐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뒤 “중산층, 서민, 중소기업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추 대표 역시 증세가 아닌 ‘조세정의 실현’에 방점을 찍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초고소득자 증세라는 명확한 타깃이 정해진 만큼 제대로 홍보만 하면 야권의 ‘전방위 증세’ 프레임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로빈 후드 같은 정의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게 법안 처리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여당은 입법 속도를 놓고도 고민하고 있다. 정부는 조속한 입법을 기대하는 반면 여당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법안 통과 실무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법인세법·소득세법 개정안은 예산부수법안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예산국회 본격 개막 전까지만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부자 증세’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한 뒤 야당을 압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최승욱 김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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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저항 악몽에… ‘증세 입법’ 총대 누가 메나
입력 2017-07-22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