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팀 아프간 피랍 순교 10주기] 선교계 위기관리 눈뜨게 해준 ‘쓴 약’

입력 2017-07-21 00:05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은 한국교회와 선교계에 위기관리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2014년 2월 19일 이집트 성지순례 도중 폭탄테러를 당한 충북 진천 중앙장로교회 신자 일부가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버스에 탑승하고 있는 모습과 취재진. 국민일보DB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이 요구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변화와 한 차원 높은 전진이다. 사태 해결 과정과 원인 규명은 쓰고 아팠으며 거슬렸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도 몰랐던 중병을 치료하는 한 알의 양약일 수 있다.” 한국위기관리재단(이사장 김록권)이 2013년 4월 펴낸 아프간 피랍사건 종합보고서의 결론이다. 이 사건이 한국교회 해외선교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취지다. 선교계는 테러에 대한 비난보다 기독교를 향한 힐난을 접하면서 선교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다. 그 가운데 위기대처능력을 기르고 단기선교에 대해 재고하게 된 것은 가시적 성과였다.

위기관리·대처능력 향상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사건 이후 위기관리국을 설치해 다양한 위기 대처 교육과 훈련을 실시했다. 위기관리 전문 단체인 미국 CCI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실제 납치와 같은 모의상황을 조성해 긴장감 흐르는 세미나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했고 그 결과물로서 2010년 한국위기관리재단을 창립했다. 재단은 외교부에 등록된 비영리단체로 선교사와 NGO 관계자, 재외국민 등을 아우르는 위기관리 전문기구다.

재단은 설립 후 선교계에 위기관리 시스템을 안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선교단체와 NGO, 지역교회를 대상으로 다양한 훈련과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자료집 발간 등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선교단체들도 이에 부응해 제2의 아프간 피랍 사건을 방지할 수 있도록 국내법과 현지법을 저촉하지 않는 범위에서 다각적 선교전략과 방법을 모색했다.

이 같은 노력은 실제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 수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필리핀 조태환(2010년) 심재석(2016년) 선교사 피살 사건을 비롯해 리비아 선교사 체포 사건(2010년), 이집트 성지순례 버스 테러(2014년) 등은 발 빠르게 대처한 위기관리 사례로 꼽힌다. 교회와 단체, 위기관리재단이 삼위일체가 돼 원만하게 수습을 해냈다.

김장생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해외선교팀장은 “여행금지지역에서의 단기선교는 하지 않고 있으며 미전도지역의 경우 현지의 허가 없이는 행사를 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보안·위기관리교육을 받은 간사만 429명”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한국예수전도단 선교본부장도 “위기관리재단이 제공하는 위기관리 지침을 모두 숙지하고 있다”며 “중동지역은 직접적인 복음 전도보다 NGO와 연결해 협력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남은 숙제도 산적

지난 10년간 위기관리 시스템은 안착돼가고 있지만 근본적인 선교전략과 방법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 이대행 선교한국 상임위원장은 “10년간 선교사역의 근본적 방향과 전략이 변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선교에 대한 교회 안팎의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것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이 상임위원장은 “지금은 복음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적극적 거부에 대한 세상의 외침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며 “선교가 거기(there)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here)서부터 흘러가는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기독교인의 본질적 삶의 변화와 각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부 개인이나 단기선교팀의 무분별한 행태도 없어지지 않았다. 2013년 인도 최대 관광지 중 하나인 마하보디사원에서는 20대 청년들이 ‘땅 밟기’ 논란에 휩싸였고 2014년 인도 비하르와 바라나시에서는 청소년 단기선교팀 수십명이 현지 당국의 허가 없이 문화공연을 준비하다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시리아 국경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추방된 사례도 있었다. 지난 5월에는 위험지역인 파키스탄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어학원을 통해 선교활동을 하던 중국인 부부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살해당했다.

조용중 KWMA 사무총장은 단기선교의 ‘제자리 찾기’를 주문했다. 조 사무총장은 “단기 팀은 흔히 ‘오지마소팀’ ‘오나마나팀’ ‘다시오소팀’ ‘어서오소팀’ 등으로 나뉜다”며 “단기팀의 최우선 과제는 현지에서 사역하는 장기 선교사들을 돕는 것이다. 겸손히 배우는 자세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조용성 예장합동총회세계선교부(GMS) 총무는 “한국교회는 선교의 동기를 재검해야 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이분법적 선교로는 결실을 맺기 어렵다”며 “선교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성육신 선교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상목 장창일 구자창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