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동 걸린 정규직 전환… 유념할 점 많다

입력 2017-07-20 18:37
정부가 전국 852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31만명 중 향후 2년 이상 일할 인력은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 왔고,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해 기준 32.8%에 달한다.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35%에 불과하다. 4대 보험 가입률도 정규직의 50% 수준이다. 양극화 해소와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간극을 없애는 것은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재원 부분이다. 정부는 당장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얼마나 소요될지 추산하지 않고 있다. 고용 안정이 우선이고 처우 개선은 나중에 하겠다고 하지만 겉모양만 정규직으로 바뀌고 실제 임금이나 복지 등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실효가 없다. 결국 국민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재원 대책도 없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덜컥 발표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신규 채용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점도 걱정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처럼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는 상황에서 한쪽이 늘어나면 다른 한쪽을 줄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는 직무별·기업별 사정이 있을 터인데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도 짚어봐야 한다. 정부는 계약기간이 정해진 공공부문 기간제근로자 19만명에 대해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청소원·경비원·시설관리원이 대부분인 파견·용역 근로자는 노사 협의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이미 산업현장에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단순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곳은 주차·경비·청소·안내 등 단순 노무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대체로 2025년이면 단순 노무직군의 90%가 고용에 위협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자리 자체가 없어지는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자리를 억지로 보전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대명제가 정착되려면 기존 정규직의 양보가 선행돼야 한다. 경직된 임금체계 등에 대한 노사 간 대타협을 통해 비정규직과 이익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전환은 공공부문이 마중물이 돼서 민간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강제해서는 곤란하다. 업종별·기업별 사정이 다른데 무리하게 추진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인센티브 등 당근책을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