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6월부터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기 시작하더니 이번 장마는 ‘물폭탄’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아열대의 우기가 시작된 것 같다. 지금 한국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재앙이며 원인은 ‘인간’이다.
1967년 사이언스지에 글 하나가 실렸다. 린 화이트 2세의 ‘우리 생태계 위기의 역사적 뿌리’라는 논문이다. 이 세계의 수많은 종교 중 기독교가 ‘가장 지독한 인간 중심주의적 종교’이며, 이런 기독교가 바뀌지 않으면 환경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현재 환경 위기의 책임이 기독교에 있다는 그의 주장 앞에서 필자는 기독교의 뿌리인 성서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특히 노아의 홍수와 무지개 이야기에 주목하고 싶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멸망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새 창조’에 관한 메시지다. 홍수는 단지 비가 많이 온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궁창(dome)으로 물과 물을 나눠 마른 땅을 내셨던 곳에(창세기 1:6) 다시 ‘큰 깊음의 샘들’을 터뜨리고 ‘하늘의 창문들’을 열어(창세기 7:11) 새 창조를 위한 본래의 상태로 되돌린 사건이다.
땅에서 물이 말라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올 때 하나님은 구름 속에 무지개를 걸어두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창세기 9:9-10) 여기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하나님이 무려 여섯 번이나 이 언약을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땅의 모든 생물과 더불어 맺는다는 것을 반복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무지개 언약은 단지 신과 인간 사이의 약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과 인간과 자연 사이의 ‘3자 계약’이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새 창조의 세계에서 자연(땅, 동물)은 신과 독립적으로 계약을 맺은 온전한 주체다. 성서적으로 홍수 이후의 자연은 인간의 지배권 아래 있지 않다.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언약의 내용 자체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도 이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대개 다시는 홍수로 우리 ‘인간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이 무지개 언약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성서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창세기 9:11) 홍수 직후 노아가 번제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8:21)
무지개의 진짜 언약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다시는 우리 ‘인간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우리 ‘인간 때문에’―노아의 홍수처럼―다른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낯설고 불편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 성서를 읽었는지 반증하는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인간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생명의 하나님이다. 성서는 단 한 번도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 말하지 않으며 결코 인간이 맘대로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라고 허용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잘못 세워놓은 ‘인간 중심주의’라는 바벨탑을 기독교 스스로 허물어야 한다.
노아의 홍수와 무지개 이야기는 인류의 민담, 철학,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뿌리 은유’다. 이것부터 바뀌어야 한다. 최근 잦아지는 홍수, 대형 산불, 폭염, 혹한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위험한 징후들은 모두 지구 온난화로 대기의 온도와 습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뿌리 은유부터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서만 바로 읽어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홍수 이후 구름 속에 무지개가 뜨면 이제 우리는 이 지구가 인간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온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아프게 되새겨볼 일이다.
장윤재 이화여대 교목실장
[바이블시론-장윤재] 홍수 뒤에 무지개 뜨면
입력 2017-07-20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