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팀 아프간 피랍 순교 10주기] “살아남은 우리 가슴에 순교 정신 심어주었죠”

입력 2017-07-20 00:03
고 심성민씨 친구 곽민환 목사, 고 배형규 목사 친구 박원희 목사, 박은조 은혜샘물교회 목사(오른쪽부터) 등이 지난 4일 CTS의 아프간 피랍 순교 10주기 특집 프로그램 녹화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CTS 제공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먼저 천국에 간 거라 믿어요. 부족한 종을 순교자로 세워주신 데 감사하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배호중(82·제주영락교회 은퇴) 장로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2007년 7월 아프간 피랍사건 당시 순교한 고 배형규 목사의 아버지인 그는 인간적인 마음도 솔직하게 꺼내보였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이니 종종 마음이 아파올 때가 있지요.”

“순교 정신 일깨워준 고마운 친구”

아프간 피랍 순교 10주기를 맞아 순교자 유족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 목사의 어머니 이창숙(78·제주영락교회 은퇴) 권사는 현재 암과 싸우고 있다. 한 차례 수술을 했지만 재발해 입원 중이다. 피랍사건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배 목사의 딸은 어느덧 새내기 대학생이 됐다고 배 장로는 말했다. 배 목사의 20년 지기인 낙도선교회 대표 박원희 목사는 배 목사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 순교다’라는 진리를 일깨워준 친구입니다.”

또 다른 순교자인 고 심성민씨에 대해서는 박은조(은혜샘물교회) 목사가 특별한 사연을 들려줬다. “피랍 순교 1주기 때 성민이 어머님이 주일 오후 예배에 오셔서 간증을 했어요. 그때 ‘나같은 죄인에게서 순교자를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하신 고백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신앙이 없던 심씨 어머니는 아들의 순교 후 극적으로 회심을 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박 목사는 설명했다. 심씨 친구인 곽민환(용인 향상교회) 부목사는 “초심이 흔들릴 때마다 깨끗한 신앙인이었던 성민이를 떠올리곤 한다”고 전했다.

“부끄럽지 않은 예수 제자로 순종할 것”

“아프간에 가기 전에는 신앙이 있긴 했지만 깊이 있는 신앙은 아니었어요. (피랍사건 후) 하나님께서 저를 말씀으로 많이 다듬어 주셨어요. 성령의 임재와 다스림을 경험한 시간이었어요.”

아프간 피랍 성도 23명 중 한 명인 제창희 전도사가 최근 기독월간지 크리스채너티투데이코리아 인터뷰에서 밝힌 심경이다. 그는 지난해 회사원에서 신학도로 인생의 경로를 틀었다.

제 전도사 등 피랍사건을 겪었던 성도들의 지난 10년은 특별했다. 성숙과 성찰의 시간이었고 새 출발하거나 삶의 방향을 튼 이들도 있었다. 아프간을 향한 짙은 그리움도 배어났다.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고 운을 뗀 이선영씨는 “(피랍사건 후)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선 답을 주셨고 은혜도 주셨다”면서 “하지만 터널 안에서 내가 답을 찾고 구하고 연약한 부분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프간은 제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자 내가 최종적으로 가야할 길의 꼭짓점 같은 곳”이라며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나씨. 피랍 사건을 겪은 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회가 우리에게 욕을 많이 했지만, 큰일은 아니더라도 좋은 일을 하며 살자. 갚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적어도 착하게 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는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한지영씨는 “아프간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곁에 늘 함께하신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모 선교사는 “아프간은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한 동시에 ‘주님 한 분이면 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라고 전했다.

CTS기독교TV는 지난 18일 아프간 피랍순교 10주기를 기념한 대담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피랍 성도 대표로 출연한 김윤영씨는 2명의 순교자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다짐했다.

“저와 함께 남겨진 스물한명은 아프간에서 함께했던 두 분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저희들에게 허락된 날들 동안 부끄럽지 않은 예수의 제자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곧 뵈어요.”

박재찬 장창일 이현우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