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前 대구 여대생 ‘억울한 죽음’… 끝내 미궁속으로

입력 2017-07-19 05:00

1998년 귀가하던 여대생을 굴다리로 끌고 가 성폭행한 뒤 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지게 한 장본인으로 지목됐던 스리랑카 국적 피고인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했던 사건은 15년 만에 희생자 정모(사망 당시 18세)양의 속옷에서 검출된 것과 동일한 DNA를 가진 스리랑카인이 발견되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결국 공소시효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유일하게 적용 가능했던 특수강도강간죄 혐의로 검찰이 기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다른 외국인 산업연수생들과 함께 정양을 성폭행하고 정양의 물건을 강취한 혐의(특수강도강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K씨(51)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18일 확정했다. 정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이 K씨 것이라는 DNA 감정 결과마저 합동 강간이나 정양의 물품 강취 사실까지 입증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최종 판단됐다.

1998년 10월 16일 밤 학교 축제에서 술을 마신 뒤 행방불명됐던 정양은 다음 날 새벽 5시30분쯤 집과 정반대 방향인 대구 달서구 구마고속도로에서 23t 덤프트럭에 치인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정양은 속옷이 벗겨진 상태였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로로 사건을 종결했다. 시신과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양의 속옷이 발견됐는데 경찰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유족에게 “축 늘어졌고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처녀의 것이 아니고 아줌마의 것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양의 유족은 10년 넘게 사고 운전자와 경찰을 상대로 고소, 항고, 민원, 헌법소원 등을 제기했지만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은 2010년 청소년 성매수 권유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국내 체류 스리랑카인 K씨가 등장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2011년 10월 5일 K씨의 유전자가 채취됐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양 속옷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K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2013년 9월 구속 기소했다. 검찰시민위원회도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법원의 결론은 “K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수강간·강간 등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10년)가 지났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시효가 남은 특수강도강간죄를 입증하기 위해 K씨의 범행을 상세히 전해들은 또 다른 증인을 내세웠다. 관건은 성폭행 외에 물품을 빼앗는 강도 행각도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일이었다.

검찰은 참고인과 증인을 내세워 K씨의 공범들로부터 K씨의 몹쓸 범행 사실을 전해 들었다는 진술을 끌어냈지만, 법원은 진술이 모순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증언이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상세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마련된 정양 추모공간에는 글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대법원으로 사건이 옮겨진 이후 사건 쟁점은 참고인 진술의 신빙성, 전문증거의 증거능력 같은 것이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