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예산실은 보통 해당 기관과 수십 번의 줄다리기 끝에 예산안을 확정한다. 깎고 또 깎아 꼭 필요한 사업만 솎아낸다는 의미에서 예산실 심의 과정은 ‘잔디 깎기’로 비유된다. 그런데 기재부 예산실이 예년보다 잔디 깎기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위)를 통해 내려온 예산사업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18일 “올해는 부처에서 얘기도 없던 사업들이 갑자기 국정위에서 예산실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정 부처만의 얘기가 아니라 대다수 부처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정위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들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중책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예산실 입장에서는 국정위가 언급하는 특정 사업들을 심의할 때 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부처들도 할 말은 있다. ‘무조건 깎고 보자’는 기재부에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국정위에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서는 신규 사업이 필요한데 예산실을 통해서는 신규 사업은 소위 ‘씨알’도 안 먹히기 때문이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예산실에 들고 가 봐야 삭감될 사업들을 들고 국정위의 각 분과 사무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예산실 심의는 현재 1차를 마친 상황이다. 최종 확정까지는 2, 3차 심의가 남아 있다. 또 다른 예산실 관계자는 “예산실은 재정상황 등을 전체적으로 봐 가면서 각 사업을 평가하고 예산요구안을 심의하는데, 국정위는 사업 자체만을 두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결국은 국정위를 통한 사업이 크게 먹혀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관가 뒷談] 기재부 예산실, 부처-국정위 직거래 속앓이
입력 2017-07-19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