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직원, 200억대 일감 몰아준 후 잠적… 檢 수사

입력 2017-07-18 05:00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차장급 직원이 무기 개발 외주용역을 친인척 회사에 대거 몰아준 뒤 잠적, 검찰이 수사 중이다. 검찰은 KAI와 거래가 활발했던 협력업체들도 조사 중이다. 특히 이 중 한 곳은 KAI가 설립부터 관여했던 곳으로 드러나 주목된다.

외주용역 담당의 잠적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는 KAI 인사운영팀 S씨를 추적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S씨는 2007년 11월 컴퓨터 수리·판매 업체를 운영하던 처남 명의로 설계 용역회사인 A사를 차려두고 200억원대를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경공격기 FA-50 등의 개발과 관련해 용역 회사 선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A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식으로 2014년까지 용역비 247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앞서 감사원 감사에도 포착됐다. 2015년 감사원은 S씨가 직원들의 용역비 단가를 부풀린 뒤 차액을 가로챘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단순 서무 직원이 설계감리 업무를 처리한 것처럼 둔갑시켜 기존 월급보다 큰 월 750만∼800만원을 지급하고 제3자 계좌로 차액을 돌려받는 식이었다. 그는 A사가 전문 도급업체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서비스업/도급(항공기/자동차 설계)’이라는 식으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2013년 말에는 장인 명의로 용역업체 B사를 추가 설립, KAI의 용역업체로 두고 2014년부터 똑같이 일감을 받았다.

검찰은 S씨의 횡령·배임 규모에 비춰 윗선의 묵인·방조 등 조직적인 비위까지 의심한다. 특히 2012년 초 방위사업청 사업감사담당관실이 KAI 외주용역비가 부풀려진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방사청 원가회계검증단 등에 통보했으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주목하고 있다. S씨의 범행 기간 하성용 대표는 경영관리본부장,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역임했다. 일각에선 S씨 모친이 하 대표와 종친이란 얘기도 나온다.

KAI가 원했던 협력업체

검찰은 하 대표 취임 이후 세워진 T사, 그리고 이곳과 연계된 Y사 등 KAI의 협력업체 2곳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T사는 KAI의 기존 협력업체 W사의 직원들이 푼돈을 모아 자본금을 납입해 세운 회사로, 설립 과정에 KAI가 관여했다. 애초 W사는 수리온 헬기의 ‘상태감시장비(HUMS)’ 등 항전 장비를 만들고 국산화 업무협약까지 체결했던 KAI의 주요 협력업체였다. 그런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시달려 부도 위기를 맞아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들이 모은 자본금 1억원은 금방 바닥났고, W사 기술이 절실했던 KAI 측은 하 대표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 대표와 함께 일한 이력이 있는 A씨(62), 항공기 부품업체 Y사를 운영하며 장기간 KAI와 협력 관계를 맺어온 B씨(59) 등에게 지분투자를 요청한 것이다. 1억원을 낸 A씨가 대표이사직을 맡아 T사의 사업이 계속될 수 있었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현재 T사의 판매처 중 KAI의 비중은 60.69%다. T사 경영에 관여하기 전 B씨가 운영하던 Y사 역시 KAI에 생산품의 85.09%를 납품한다. T사와 Y사 실적은 2013년 이후 상승세다. 검찰은 T사와 Y사의 돈이 하 대표 측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B씨는 “그동안 해외에서 골프도 한 번 치지 않은 삶이었다”며 “단 한 점 부끄럽게 살아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글=황인호 이경원 기자 inhovator@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