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뗀 ‘베를린 구상’… 끊긴 남북 대화채널 잇나

입력 2017-07-18 05:00
한 어린이가 17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망원경을 통해 임진강 너머 민통선 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남북 간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군사당국회담을 오는 21일 개최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다음달 1일 열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파주=곽경근 선임기자

정부가 북한에 적십자회담과 군사당국회담을 동시 제안하는 방식으로 남북관계 개선 작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북측의 반응이 불투명하고 추가 도발 우려도 여전하지만 박근혜정부에서 완전히 끊어졌던 남북 간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호응 가능성을 따진다기보다는 사안 자체의 시급성에 따라 내린 조치”라며 “남북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단초가 될 조치라는 점에서 제안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북한 반응을 지켜봐야겠지만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끈기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남북 간 대화는 2015년 12월 차관급(통일부) 회담 이후 단절된 상태다. 이듬해 북한이 4차 핵실험(1월)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를 강행하자 박근혜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판문점 연락관 채널과 군 통신선을 모두 차단했다. 현재 남북 소통 수단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확성기를 사용하거나 언론매체를 통하는 것 외에 없다.

이런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박근혜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남북 채널이 끊기면 군사분계선(MDL)이나 북방한계선(NLL)에서 우발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확전을 방지하는 메커니즘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근혜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며 군사회담을 포함한 모든 남북대화를 거부했다.

북한이 우리 측 제안을 받아들여 회담이 성사된다면 남북 간 단절 상황은 1년7개월 만에 종식된다. 군사회담만 놓고 보면 2014년 10월 이후 2년9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회담에서 별다른 결과물을 얻지 못하더라도 남북 접촉이 성사된 것 자체부터 의미가 적지 않다. 만약 군사회담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도출된다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군사회담 제안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회담이 개최되면 전방 확성기 방송 중단, 상호비방 전단 살포 중단, 서해지구 군 통신선 재가동 문제 등이 논의될 것”이라며 “이 문제에서 남북 간 타협이 이뤄진다면 남북교류 재개에 유리한 조건이 조성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제안 이전에 남북 간 물밑 접촉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베를린 선언’ 발표 직전 판문점을 통해 연설 내용을 북한에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개방·3000’ 구상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일방적으로 발표돼 북한의 격한 반발을 초래한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투명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북한과 물밑 접촉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면서도 “물밑 접촉으로 합의를 공식화하는 것이 협상의 ‘ABC’다. 그런 점에서는 사전 접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과의 사전 접촉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 내부에서도 대북 비공개 접촉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선을 통한 대북 접촉은 물론 지양해야 한다”면서도 “공식적 성격을 갖되 외부에는 알리지 않는 형식의 접촉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