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실험이 시작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정부의 최저임금 상승분 직접 지원 정책이 ‘한국형 기본소득제’로 정착될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최저임금 1만원은 단순히 시급 액수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권리를 상징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최저임금 인상 결정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득 주도 성장으로 사람 중심의 국민성장 시대를 여는 대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업종에 대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 16.4% 중 최근 5년간 인상률(7.4%)을 뺀 나머지에 해당하는 인건비 ‘3조원+α’를 현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날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위해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하라는 지시는 기본소득 제도의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기본소득제란 정부가 소득과 자산 수준, 직업 유무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해주기 위해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시범 실시되고 있다.
이번 정부의 최저임금 일부 지원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300만명의 근로자가 직접 대상이고, 4인 가족 기준으로 1000만명 이상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제 성격을 띠고 있다. 최저임금 대상 3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300여만명이 매달 12만원의 기본소득을 받는 셈이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오늘(17일)부터 정부 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세부적인 지원 대상, 전달체계 등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최소한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까지는 정부 지원이 이어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생계 걱정 없이 행복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기본소득제의 가장 큰 단점은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과 같은 방식으로 정부 지원액을 추산해보면 2019년에 최소 5조2000억원, 2020년에는 6조9000억원의 재정이 필요하다. 세금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될 필요가 있지만 정부가 아무런 예고 없이 이를 발표한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2008년 고유가 대책의 하나로 전 국민에게 6만∼24만원을 현금 지급한 유류세환급 정책의 부작용도 거론된다. 당시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원 없이 돈을 썼다”고 자평했지만 이 여파 등으로 2011년부터 정부 재정 건전성은 급속히 악화됐다. 유류세 환급이 일회성으로 끝난 데 비해 최저임금 지원은 매달 지원하고, 1년 만에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재정 부담은 더욱 크다.
복지 제도인 기본소득제를 노동시장에 접목시킨 데 따른 혼란도 우려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는 “노동시장은 시장답게, 복지는 복지대로 가야 하는데 이번 정부 정책이 잘못하면 왜곡된 복지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정현수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유례없는 최저임금 정부지원…‘한국형 기본소득제’ 실험?
입력 2017-07-18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