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방산비리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후 첫 사정수사로 문재인정부가 강조한 방위산업 적폐 척결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는 14일 “KAI 측이 원가를 조작해 개발비를 빼돌린 혐의를 포착했다”며 “KAI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검사와 수사관 수십명을 보내 KAI 회계자료 등 관련 문서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디지털 자료, 관련자들의 휴대 전화 등을 확보했다.
앞서 검찰은 2014∼2015년 진행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방산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의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KAI 연구개발 과정의 각종 비위 혐의에 대해 광범위한 내사를 진행해왔다. 감사원은 2015년 10월 KAI가 다목적 헬기인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원가를 부풀려 계상하는 방식으로 547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KAI가 수리온 외에 다른 국방 사업 개발에서도 이 같은 위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KAI는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사업,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인 KF-X 사업 등을 수행해 왔다.
검찰은 KAI 전·현직 경영진의 횡령 등 비위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에는 하성용 KAI 대표 집과 차량, 휴대전화 등도 포함됐다. 검찰은 하 대표 등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대표는 과거 임원 시절 환율 차익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꾸준히 받아왔다. 검찰은 하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원가 부풀리기 혐의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며 “내사 자료, 감사원 조사 자료 포함해 여러 가지를 보고 있다. 임직원 비리 등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KAI 경영진을 넘어 방위사업청과 박근혜정부 실세들을 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KAI는 그동안 주요 핵심 제품 선정·납품 과정에서 거액의 상품권을 군과 정치권 관계자들에게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2015년 1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KAI는 2013년과 2014년 52억원 상당의 상품권을 사들였다. 당시 KAI는 “명절과 경조사, 포상 등으로 직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구매했다”며 “유관기관에 대한 로비는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으나 이중 17억원 상당의 상품권 사용 내역에 대해선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다.
방산업계 안팎에선 그간 대구·경북 출신인 하 대표가 박근혜정부와 밀접한 관계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2011년 KAI에서 퇴사한 하 대표는 박근혜정부 초기인 2013년 대표로 금의환향했고 지난해엔 연임에 성공했다. 업계에선 감사원 감사 이후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청와대와의 이런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한편 KAI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당혹감과 함께 뒤숭숭한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이 동시다발적으로 갑작스레 이뤄진 탓에 KAI 관계자들도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느라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KAI 측은 “부당한 원가 부풀리기는 없었다”며 “올해 말 최종 발표가 나는 T-50 교체 사업 입찰에 불똥이 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방산 적폐척결 신호탄?… 檢, 비리혐의 KAI 압수수색
입력 2017-07-14 18:34 수정 2017-07-14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