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하윤해] 극우와 포퓰리즘

입력 2017-07-13 17:47

촛불이 지나간 자리에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국정농단이라는 진창에서 갓 벗어난 한국 정치를 위협하는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보수 진영에서는 극우 논쟁이 지병처럼 다시 찾아들었다. 퇴행적인 논란임에 틀림없다. 자유한국당의 병폐에 메스를 댈 것으로 예상됐던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극우 논쟁을 촉발한 것은 아이러니다. 치료하라고 불렀더니 오히려 병을 재발시킨 모양새다. 당초 한국당에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인 류 위원장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한 최고위원은 “홍준표 대표가 가장 잘한 인사”라고 말했다. 류 위원장을 아는 의원들은 “소신은 강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감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류 위원장은 지난 11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제 저지른 잘못보다 너무 과한 정치적 보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탄핵 사유는) 실체가 없다”며 “무슨 실정법을 위반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여 불에 기름을 부었다.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극우화되는 것 같아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는 글을 올렸다. 류 위원장을 직접 스카우트한 홍 대표는 장 의원의 페이스북에 “극우란 개념을 한번 찾아보시고 비판하시기를”이라는 댓글을 달며 엄호했다.

‘극우가 무엇이냐’는 논쟁은 학문 영역에 가깝다. 또 말 한마디를 가지고 극우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류 위원장의 생각이 과연 민심을 반영하느냐’는 문제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발언이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이른바 ‘태극기 민심’이 보수의 위기를 극복할 처방전이냐”고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혼나고도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한국당의 현실이다.

문재인정부를 향해서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 민심과 대중은 다른 용어다. 민심은 오류가 없는 국민들의 일치된 생각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대중은 불특정된 다수이며, 오류 가능성이 있다. 민심을 향한 정치가 민주주의라면,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는 포퓰리즘이다.

탈(脫)원전, 공무원 증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등이 포퓰리즘으로 지목받는 문재인정부의 대표적 정책들이다. 보수 일각에서는 문제 인사들의 장관 임명 강행, 사드 배치 지연, 외국어고·자립형 사립고 폐지 등도 포퓰리즘으로 덧칠하고 있다. 야권이 적폐 청산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며 저항한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날선 비판으로 유명한 정두언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를 향해 ‘겸손한 얼굴을 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발굴했다. 그는 “문재인정부의 포퓰리즘은 겸손한 표정을 짓고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면서 “그래서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나라 곳간은 비어가고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도 문재인정부는 이명박·박근혜정부와 달리 선한 얼굴을 하고 있어 지지율이 고공 행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설령 포퓰리즘이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국민의 삶이 나아진다면 크게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포퓰리즘으로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정 전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등 정책을 펼치면 오히려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면서 “서민들이나 젊은이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에는 극우가, 진보에는 포퓰리즘이 가장 달콤한 유혹이다. 제일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수지만 강력한 지지집단을 구축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하지만 보수가 극우에 빠지고, 진보 진영이 포퓰리즘에 휘둘린다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여야 모두 지지자들에게 “몸에 좋은 쓴 약을 먹으라”고 용기 있게 설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윤해 정치부 차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