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순례자의 지혜

입력 2017-07-14 00:01

월터 스콧(Walter Scott)은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그는 평생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임종 전 사환에게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사환은 주인이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인 몇 권의 역작을 가져왔다. 하지만 주인은 “아니, 책이라면 성경 말고 또 무슨 책이 의미가 있단 말이냐”라며 호통을 쳤다.

그가 죽기 전 찾은 성경은 죽음의 순간뿐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위한 지혜를 가르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1).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는 분이시지만 사람은 시간 안에 머물러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시간의 제한을 받는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각각의 때를 살아간다.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유년기를 넘어 청년과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때를 살아간다.

하나님은 각각의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아름다움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이 전도서의 첫 번째 교훈이다. 그러나 이 교훈은 곧 이어지는 다음 교훈과 충돌한다. 그것은 영원을 사모하며 각각의 때를 절대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대인의 전승 가운데 ‘다윗왕의 반지’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어느 날 다윗왕이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나를 위한 반지를 새겨오라. 반지에는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에도 들떠 오만하지 않으며, 패배를 겪었을 때는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가 담겨야 한다.”

보석 세공인은 답을 찾을 수 없어 지혜로운 왕자 솔로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솔로몬이 말했다. “이 글귀를 반지에 새겨 넣으시오. 왕께서 이 글을 보시면 승리에 도취한 순간에는 자만심을 가라앉히며, 패배의 절망적 순간에는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무슨 글이었을까.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우리는 모두 때와 때를 여행하는 시간의 여행자들이다. 시간을 살아가는 시간의 순례자들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때를 지나며 또 다른 때를 맞을 뿐, 우리의 어느 순간도 영원하지 않다.

슬픔의 때에는 슬퍼하라 말한다. 기쁨의 때에는 기뻐하라 말한다. 슬픔은 슬픔으로써 이길 수 있고 기쁨은 기쁨으로써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슬픔도 지나가고 기쁨도 지나갈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는 순간에 붙잡힌다. 왜냐하면 순간이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보이는 현실이 절대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에게 영원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은 순간에 쫓기거나 붙잡히지 않게 한다. 오히려 순간을 잘 살아가게 하는 지혜를 갖게 한다. 인생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모든 순간을 음미할 수 있다. 슬플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도 가벼이 지나치지 않으며 매 순간마다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지혜를 배울 수 있다.

한 권사님이 아까운 나이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분은 주일이면 예쁜 모습으로 안내봉사를 했다. 그녀는 안내 전 ‘우리 교인들이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삶을 살다가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할 텐데 제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인사할 때 마음이 다 풀려 은혜 받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녀는 암 투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병상을 찾은 지인들에게 했던 농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그것은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래”였다.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에 눌리지 않는 여유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박명이라는 문제를 아름다움으로 해결하고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자신의 때, 하나님의 선물을 음미한 것이다. 그렇게 삶의 순간도, 죽음의 순간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다가 주님 앞으로 가셨다.

성경의 교훈은 인생예찬이다. 삶의 모든 때가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인생의 여행을 위한 지혜를 주는 책이 성경 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박노훈(신촌성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