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으로, 거침 없는 시진핑의 ‘일대일로’

입력 2017-07-13 05:01
지난달 29일 세르비아 유일의 철강회사 제레자라 스메데레보 노동자들 옆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AP뉴시스

동유럽 세르비아의 인구 10만명의 작은 도시 스메데레보. 이곳에 위치한 세르비아 유일의 철강회사 ‘제레자라 스메데레보’에는 한때 미국 철강기업 US스틸의 깃발이 펄럭였지만 지금은 중국 최대 철강회사 허베이강철의 깃발이 선명하다.

제레자라 스메데레보는 지난해 허베이강철에 4600만 유로(약 600억원)에 인수됐다. 2012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난을 겪던 US스틸이 단돈 1달러에 정부에 소유권을 넘긴 지 4년 만이다. 이미 자국 내에서 철강 과잉 생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굳이 망해가는 세르비아 철강 회사를 인수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허베이강철의 인수 덕에 월급은 비록 20%가량 줄었지만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 5200여명의 세르비아 노동자들에게 중국은 은인의 나라가 됐다. 스메데레보의 한 주민은 “중국이 우리 도시에 온 지 1년밖에 안됐지만 달라진 분위기가 실감 난다”고 말했다. 중국은 돈으로 세르비아에서 명성과 영향력을 사들인 셈이다. AP통신은 12일 “제레자라 스메데레보는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추진 중인 중국은 유럽의 관문인 세르비아를 유럽 공략의 교두보로 삼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세르비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세르비아와 20여개의 투자 협정을 체결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지지를 얻어냈다. 시 주석은 당시 세르비아와 중국 관계의 상징인 제레자라 스메데레보도 시찰했다. 중국 기업들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다뉴브강 대교 건설 및 발전소 재개발 프로젝트, 베오그라드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잇는 고속철 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세르비아에 투자된 중국 자본은 55억 유로(약 7조2000억원)에 이른다. 양국은 또 지난 10일 베이징과 베오그라드 직항 노선을 올해 안에 개통키로 합의했다.

세르비아 입장에서도 인권이나 언론 자유 등의 지표를 들이대고 투자 여부를 저울질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달려드는 중국에 더 끌릴 수밖에 없다. ‘스탈린급 독재자’라는 악명을 가진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도 헝가리를 중국의 중부와 동부 유럽 투자와 사업의 허브로 만들기 위해 중국에 한창 구애 중이다.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참석한 오르반 총리는 “세계화의 옛 모델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면서 “세계경제의 엔진은 서방이 아니라 동방”이라고 중국을 칭송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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